그대와 나 그대와 나 혜원 박영배 꽃잎을 앞세운 가지마다 산등성이 구비구비 붉은 울음으로 피어 나고 우득우득 빗소리 봄을 물고 내리는데 내 가슴 빈 자리는 늘 당신을 찾습니다 사랑 그리움 당신은 그곳에서 맴을 돌고 나는 이곳에서 부질없는 빗소리만 듣습니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4.04
꽃길에서 만난 봄 꽃길에서 만난 봄 혜원 박영배 당신이 꽃문 열고 꽃길로 나올 때 새순도 열리지 않는 내 심장이 두근대며 숨소리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한걸음 또 한걸음 꽃길로 걸어오면 생가지들은 다소곳이 얼굴 붉히고 나는 눈 둘 곳 찾지 못해 개나리를 꺾었죠 왜 그리 심장이 뛰던지요 전생에 당..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4.01
한밤중에 한밤중에-문정희 한밤중에 번개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단숨에 내 심장에서 붉은 루비 같은 죄들을 꺼내 검은 하늘에 대고 펄럭이었다 낮 시간 동안 그토록 맑은 햇살을 풀어 푸른 숲과 새들을 키우던 저 산이 보낸 거라고는 믿기 어려운 번개가 한밤중에 나를 찾아왔다 부들부들 떨고 있..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4.01
마흔 살의 시/문정희 마흔 살의 시/문정희 숫자는 시보다도 정직한 것이었다 마흔살이 되니 서른아홉 어제까지만 해도 팽팽하던 하늘의 모가지가 갑자기 명주솜처럼 축 처지는 거라든가 황국화 꽃잎 흩어진 장례식에 가서 검은 사진테 속에 고인 대신 나를 넣어놓고 끝없이 나를 울다 오는 거라든가 심술이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4.01
즐거운 밀림의 노래/문정희 즐거운 밀림의 노래/문정희 백화점마다 모피 세일을 한 후 거리에는 때아닌 짐승들이 밀려나와 소란을 떨었다. 빌딩 사이로 밍크가 재빨리 사라지는가 하면 지하실에는 양 한 마리가 석간신문을 사고 있었다. 오리들은 남의 이불 속까지 숨어들었다지. 아이구 재미있어라, 심지어 악어들..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3.30
화장化粧을 하며 / 문정희 화장化粧을 하며 / 문정희 입술을 자주색으로 칠하고 나니 거울 속에 속국의 공주가 남아 있다 내 작은 얼굴은 국제 자본의 각축장 거상들이 만든 허구의 드라마가 명실공히 그 절정을 이룬다 좁은 영토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금년 가을 유행 색은 섹시 브라운 샤넬이 지시하는 대로 볼연..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3.29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사람들 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 거래 우리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3.27
보고 싶어요-김용택 보고 싶어요-김용택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마음을 돌리려고 아무리 뒤돌아서고 뒤돌아서도 당신은 나보다 빨리 도시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계십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싶은 이 마음을 어디에다 다 감추고 보고 싶다는 이 말을 어디다 다 하겠어요 보고싶어요 당신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3.25
횡단보도를 건너며 횡단보도를 건너며 혜원 박영배 나에게 주어진 아주 단순하고 짧은 여유 내 생명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자유의 광장을 건넌다 이 루트를 통해 귀순해오는 이들은 철저한 감시와 미확인 지뢰밭을 피해 자유의 철책까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건너오거나 건너간다는 것은 일단. 양쪽의 눈..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3.25
봄길/정호승 봄길/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3.23
끝없이 마음을 다하는 것 / 황라현 끝없이 마음을 다하는 것 / 황라현 목숨 바칠만큼 마음 쓰지 않고서 사랑이라 말하지 마라 마음의 징표 하나 얻었다고 사랑이라 믿지 마라 그리움 참을 길 없어 맨발로라도 미친 듯 달려간 것이 아니었다면 그리워했단 말 남발하지 마라 그림자까지 말라가며 통곡할 때 심장 터지도록 아..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3.22
팔월에 오는 비 팔월에 오는 비 혜원 박영배 반 쯤 깊어진 여름. 돌아앉은 내 산간이 시처럼 슬프다고 들꽃이 도란도란 피었는데 주소도 모른 어느 마을 사립을 나선 빗줄기가 눈치도 없이 내게로 온다 팔월에 비가 오면 그리움도 칡넝쿨만큼 길어져 먼 산 속 메아리처럼 소식 없이 달려 올 절절한 시 한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3.18
봄의 서곡-노천명 봄의 서곡/노천명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 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 아래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3.12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3.08
옷을 갈아입으며 옷을 갈아입으며 惠園 박영배 아내가 다려준 옷을 입는다 울퉁불퉅한 손가락과 퇴행성 무릎관절로 요리조리 재봉선을 잡고. 칼날을 세우고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바짓가랑이를 뽑느라 혼자 끙끙대던, 눈도 침침한 아내가 출근길 내 인격과 말과 행동을 곱게 다려준 아침이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3.07
나무 / 박재삼 나무 / 박재삼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을 보아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 스란치마의 물살이 어지러운 내 머리에 닿아 노래처럼 풀려가는 근심, 그도 그런 것인가. 사랑은 만번을 해도 미흡한 갈증, 물거품이 한없이 일고 그리고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3.06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2.27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2.14
너 처음 만났을 때/문정희 ♥ 너 처음 만났을 때 - 문 정 희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2.14
아름다운 마침표/신표균 아름다운 마침표/ 신표균 서른 일곱 살 처녀가 가발 머리 곱게 빗고 화장을 고친다 수심에 찬 거울 앞에 서서 솜사탕 같은 아침 물안개 속에 쓸쓸한 미소 짓는다 그녀, 웃으며 영정사진을 찍는다 예쁘게 찍어 주세요 엄마가 시집 못 보내고 손 놓은 딸 웃는 모습 품에 안고 살게요 환한 얼..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