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시 짓는 김 오르고

나목의 글밭 669

사랑道 그리우面 얼음里

사랑道 그리우面 얼음里 임현숙                     사랑道 오늘 날씨는 흐림냉소 깃든 하늘이진눈깨비를 퍼부어도 슬프지 않아 내 안에 가득한 그리움의 잔영고운 향기 그리우面  눈물이 날까 봐추억마저 지웠지 해와 달의 거리만큼 멀리 있어도마음에 길이 있어 오가던 인연들이제는 끊겨버린 다리 앞에얼음里가 생겼네 매화꽃 눈 뜨는 날제비가 그리운 사연 물고 와도사랑道 그리우面 해동里가 될까 몰라. -림(20140124)  https://www.youtube.com/watch?v=VSuF58pUhTg

잊을 수 없는 기억

잊을 수 없는 기억                                                                                                                                                                임현숙  출근하는 막내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밥은 반 공기 정도 담고 반찬을 많이 담는다. 막내는 해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지만 고기반찬을 좋아한다. 밥을 풀 때마다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뼛속에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타와에서 기다리던 소포가 도착했다. 드디어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다. 군대 간 아들의 입고 간 옷과 신발이 든 소포를 받고 대성통곡했다는 엄마의 심정을 알..

겨울을 보내며

겨울을 보내며 임현숙  바다를 건너온 봄이겨울잠이 목마른 내 빈한 뜨락에바다 빛 수다를 풀어놓는다 지난겨울은 순결한 눈빛으로 기도를 가르쳤다  빈 들에서 주린 이를 위하여눈밭에서 헐벗은 이를 위하여겨울비처럼 눈물짓는 이를 위하여다시 드러날 나의 허물을 위하여 지난겨울은 마음 수련원이었다무언의 회초리로 내 안에 파도치는노여움과 모난 등성이를 꾸짖어참 어른다운 자리로 이끌었다 봄이면 철부지로 되돌아갈 일 겨울마다 받은 수십 개의 수료증이 마음 벽을 도배한다 봄의 헛기침이 뒷산의 잔설을 불어 내자 잰걸음으로 떠나는 겨울  구미호 봄바람 품에 안기며 겨울의 언어로 배웅한다다음에도 지엄한 회초리를 기다리겠다고. -림(20220222) https://www.youtube.com/watch?v=Mwymu4fO9Tg

설렘만으로도

설렘만으로도 임현숙  봄 햇살 잔기침하는 벤치에 백발노인복권을 눈빛으로 바싹 굽고 있다   타닥거리는 간절함 질펀하다 모래성 짓는 손가락의 가는 떨림이나연애편지를 받아 든 뻐근한 콩닥거림그 이루어지기 직전 설렘이 행복 순둥순둥 봄바람진달래 빛 두근거림을 엎질러 놓고마른 밭두렁에 들불 번져오는 생생한 이 느낌.   -림(20250226)  https://www.youtube.com/watch?v=I7HR_mZQlew

나목(裸木)

나목(裸木) 임현숙                바싹 야윈 손가락 하늘 우러러 침묵의 서원 올리는벌거숭이 나무 푸릇 무성한 여름의 기억이서릿발에 빛날 때마다손가락 마디마다 눈물 맺혀도 실개울 얼음 꽃 지며는다시 만날 초록이기에겨울의 냉정이 밉지 않다고혈관 따라 흐르는뜨거운 묵계 새벽마다 지성 드리던어머니의 갈퀴 손 끝에잘 여물은 열매우리 봄날의 환희.  -림(20250131) https://www.youtube.com/watch?v=eIUu93fTORc&t=10s

용서라는 말의 온도

용서라는 말의 온도 임 현 숙   당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서나는 불꽃으로 돌진하는 불나방이었습니다 오롯이 한 빛만 향해 파닥였지만  회전 벨트처럼 늘 제자리였던 길때론 외로웠고때론 슬픔으로 몸부림치며스스로 상처 입던 길 사랑은 무지개색이라 말하던뒷모습을 보았을 때이글거리던 불꽃에 날개는 얼어버리고비로소그 길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더는 그립지 않아도 되는 일더는 아프지 않아도 되는 일이제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일 한 때 사랑이라 이름하던 그 길에'용서해'라는 팻말을 박아 놓고 돌아오는 사람그 말의 소름에뜨거웠던 기억의 고리마저 고드름꽃이 피어납니다.  -림(20230202) https://www.youtube.com/watch?v=g_3a8ABfmxw

밥솥에 늘어 퍼진 시간

밥솥에 늘어 퍼진 시간 임현숙   심심한 손가락이말하는 밥솥에 쌀을 안치다고여있는 시간의 무게를 가늠해 보네 생의 반세기를 훌쩍 지나사랑도 미움도 가랑잎 되고 나니손지갑이 빵빵한 시간 부자 사이버 마을을 기웃거리고책갈피를 넘겨보고밤하늘을 첨벙거리며 별을 줍는짝퉁 글쟁이고인 물에 이끼 같은 기억의 파편을오래도록 반추하며겨울 행 고속도로를 달려가네 수박 같은 여자이고 싶었으나밤송이였던 여름이 하롱하롱 숨지고  마음밭에 나이테에따분이 무성히 자라는 이 가을밥솥 한가득 늘어 퍼진 시간을굴풋한 하루에 고봉으로 퍼주고 있네 망각의 겨울에 침몰할 때까지 · · · -림(20250202) https://www.youtube.com/watch?v=rgGCfFPa-qI

고물은 살아있다

고물은 살아있다 임현숙   새 문물 인덕션에 밀려나 선반에서 거미집 짓고 있는휴대용 가스버너 스무 해 넘도록새파란 불꽃이 화룽화룽몸통 녹슬고 스위치 뻑뻑해도스위치를 돌릴 때마다여직살아있다고 번쩍이는 외눈부엌을 기웃거리시던팔순의 시어머니 눈빛 전 생애 다 내어주고그루터기만 남아여기서 저기서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는오래 산 것들.  -림(20250128) https://www.youtube.com/watch?v=ulfOhK2WnPw&t=56s

어떤 회한

어떤 회한 임현숙  도망간 잠을 쫓아가다 지치면젊은 날 휘두른 칼날의 회한이 삼류 무대의 막을 올린다 '베르디의 나부코'가 흘러나오는 찻집한 여자가 속눈썹이 긴 남자를 돌아서고 있다그녀의 부족함이 그의 가난을 받아줄 수 없는 건 아니라는데해사한 미소에 얹힌 코털 때문이었을까커피가 식기도 전에 일어서는 모질은 여자다음날 갱지에 써 보낸 몇 줄의 무덤덤한 문장으로순정을 베고 만다 그을음을 남기고 꺼져버린 촛불지워도 지워내도 스미인 칼 빛 오래도록 행복을 빌었던당돌한 청춘의 흔적 머리에 억새꽃 한창인 이제그만 잊어도 되지 않겠니 물안개 속에서 먼동이 불새처럼 날아오른다정갈한 햇살에 머리를 감아야겠다. -림(20250115) https://www.youtube.com/watch?v=92hmjW1-NJI

설날 밥상

설날 밥상 임현숙   코리아의 명절 설날밴쿠버 우리 밥상에 만국기 휘날리며젓가락이 세계 여행을 한다 차이나에 도착해 차오몐 한 입오사카로 날아가 튀김 한 점 이탈리아에선 손녀만 피자 한 조각내 고향 코리아의갈비찜과 산적그리고 떡국 한 입두루두루 다니다 가도내 젓가락 단골은 김치 맛집 우리 집 밥상은설날에도 냠냠 세계 일주 떡국 한 사발에나이 한 살 더 먹던어머니 밥상 그립다.  -림(20250128) https://www.youtube.com/watch?v=tserjeGZaVY&t=5s

첫눈

첫눈  임현숙  첫눈 내린 이른 아침소복소복 숫눈에  내 것이라고 발 도장 꾸욱 찍습니다 눈보라 펄펄내게로 와무조건 내 편이라며함박꽃 한 아름 안겨줍니다 저 아랫마을 길 하늘로 이어놓고내 비틀린 발자국 싹싹 지우고마음밭 메말라 피지 않던 시꽃구름 빛 하늘에 몽글몽글 피어나며내 여린 눈동자에외로운 가슴팍에하얗게 흐드러집니다 첫사랑 같이 다가와  봄 햇살처럼 피어나는 눈꽃허물 덮는 내 편 있어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오늘입니다.  -림(20250202)   https://www.youtube.com/watch?v=Y7nI6h2z0Ns

내 신실한 종

내 신실한 종 임현숙    발톱을 깎다가 가뭄 든 밭을 보았다손바닥보다 더 주름진 발바닥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어둡고 시리고 끈적한 날들을 무병하게 지나오며발효된 서사(敍事)가 밭고랑에 꿈틀거린다딱딱한 바닥과 말랑말랑한 뒤꿈치의아슬아슬한 첫 입맞춤부터달과 해의 무게를 버텨내며 다져진 군살이이따금 티눈으로 샐쭉할 때면 발이 투덜거리곤 했다잘 나가는 신작로만 맞댄 건 아니었으나시궁창에 얼굴 비비지 않은 걸 고마워할까담배 연기 같은 허무를 탐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길까구수한 맛 미끄럼 치는 주방 바닥흙냄새 정다운 오솔길과의 만남이소소한 행복이었음을 기억할까지금도 까슬한 바닥 위에 맨살로 납작 엎드려명령을 기다리는 내 신실한 종내일은 태양과의 맞선을 주선해야겠다.   -림(20250113) https://www..

설날 풍경 한 점

설날 풍경 한 점 임현숙  그 해 설날 오후보란 듯이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진초록 들판에 열두 달이 엎치락뒤치락다섯 마리 새가 날고 폭탄이 터졌다사돈간에 화투패 들고 앉아 허허허남의 설사를 좋다고 긁어가고피박, 광박 징한 용어들을 뱉어가며 눈치 싸움을 즐겼다 격도 체면도 뱀 허물처럼 벗어버린사돈끼리의 우애로운 자리였는데이국땅에서 그들 없는 설날을 만나니상 차리느라 해쓱하던 시간이 보물처럼 비쳐온다 잔소리쟁이 작은 언니 막내 요리는 눈도 즐겁다던 큰오빠 그림처럼 앉아 받기만 하던 손위 시누이도 기억 속에서 고대로인데 언젠가 다시 만날 명절에는 하나둘 먼 길 떠나  빈자리엔 귀에 익은 목소리만 희미하겠다  명치에 박제된 그날의 군상 돌아가고 싶은 우리 자리.  -림(20250122) https://www.y..

부앙부앙 울었다

부앙부앙 울었다 임현숙               부앙 울리는 저음의 색소폰 소리칠순의 멋쟁이 오빠는황혼의 회한을 불어대고 있었다힘겨운 날숨은 지난날의 보람이요꺼지지 않은 불꽃의 여생인 것을아우들이 알아주길 바랐을까삐걱대는 음에 키득거리던 못난 아우들을발그레 웃으며 바라보던큰 오라버니는다시 들을 수 없는 울림을 남기고은하 별이 되었다내 어릴 적에 예쁜 막내라고친구 모임에 손잡고 다니셨는데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도 못 해부앙부앙 울었다.  -림(20111128)   https://www.youtube.com/watch?v=dZrT2o9TfOQ

그런 날에는

그런 날에는 임 현 숙  개미 발소리가 들리는 날*까똑 소리가 기다려지는 날딸의 귀가를 재촉하는 날잘 정리된 서랍을 다시 뒤적이는 날그런 날엔 애꿎은 추억을 벌씌운다 *까똑까똑 말 거는 것이 귀찮은 날말벗이 되어주는 딸아이가 성가신 날넋 놓고 있고 싶은 날그런 날엔 내게 타이른다산다는 건 낡은 추억을 깁는 게 아니라싱싱한 추억거리를 짓는 거라고.  -림(20210609)*카카오톡 알림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jUgmEOcxs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