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시 짓는 김 오르고

나목의 글밭 690

빨래 널기 좋은 날

빨래 널기 좋은 날 임현숙 햇살이찰랑한 강물도 훌쩍 다 마셔버릴 듯짱짱한 날 모처럼 마당에 빨래를 넌다 건조기 속에서 몸을 말리던 빨래가 햇살 침이 뼛속까지 박혀도지옥 불의 혀보다 간지럽고 살을 헤집는 바람도 뒤엉켜 도는 아궁이보다 상냥하다고 천국 만세라며 춤춘다 꼭꼭 숨어 살던 곰팡이먼지로 사라지고 축 늘어졌던 실오라기들이 탱탱하게 젊어진다 빨래 널기 참 좋은 날내 축축한 그림자도 빨랫줄에 누워높디높은 하늘에 응석을 부려본다. -림(20130426) https://youtu.be/91NP19FODQc

뜻밖의 위로

뜻밖의 위로 임 현 숙 햇살이 넉넉한 날 울적함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고들꽃 반기는 오솔길을 걷는다 깊어진 하늘에 구름 돛배 하루를 쫓고풀잎 귀에 소곤거리는 바람 따라발걸음도 저절로 안단테 칸타빌레발밑의 먼지처럼 일어서던 시름이 가라앉는다 이름 모를 들꽃과 눈을 맞추면수줍어 벌렁거리는 새가슴이 순간만은 돌아갈 곳 없는 나그네여도 괜찮다 들길에 선 외로움을 찬찬히 어루만지는햇살과 바람과 들꽃거저 받는 선물이 몽땅 나만의 것이다 호주머니를 털어내고 돌아오는 길벌새 한 마리 부리를 세우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림(20160614) https://www.youtube.com/watch?v=XQT8EcG9ms8

나의 유월은

나의 유월은 임현숙 여름의 문지방 유월어제보다 높아진 하늘에 어린 구름 몇 점 뛰어놀고손 까부르던 나무 이파리 어느새 어른이 되어산처럼 큰 그늘을 내어준다 활활 타오르는 장미 푸름을 부채질 하고이런저런 생각에서 깜짝 돌아오면파랗게 스며드는 고요 오늘의 유월은뜨거운 것들이 오기 전가슴 속 잉걸불을 숨 고르는 시간이다 내가 듣지 못한 유월의 총포 소리보지 못한 피난의 물결 속에서헤어졌던 남북의 아픔이일흔네 번의 유월이 지나도누군가의 가슴에 살아있는데나의 유월은 죄스럽게도 요람을 거닌다 다시는 포화 소리 들리지 않기를다시는 슬픔이 노략질하지 않기를 천천히 걸어가는 한 낮 햇살 위에 옷깃 여민 마음이 바로 눕는다. -림(20250601) https://www.youtube.com/watch?v=3oMVQ8..

미안하다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은 임현숙 일곱 살 손녀잘 다녀오라는 말에 입술만 삐죽 내밀고 집을 나서고손녀 뒤통수에 손 흔드는 할머니 그림자가 갸우뚱하다 방과 후 데리러 간 할머니를 반기는 손녀 아침에, 할머니 속상했어왜에~네가 할머니한테 인사도 안 하고 화내고 가서미안해~~ 하루의 서운한 그림자가 파랗게 물든다 늦게 도착할지라도미안해, 라는 말은꼬인 신경을 풀어내는 묘약무진장 용기 있고 따스한 말나를 내려 너를 살리는 일 천국에 이르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다. -림(20250507) https://www.youtube.com/watch?v=ThKPDVU0d_U

출옥하기

출옥하기 임현숙 고치에서 눈뜬 무당벌레연두 이슬에 여린 날개 퐁당 풋 바람 드는 봄이라고 길어진 햇살이 손 까부르고푸른 바람 빗장을 열어도겨울 감방에서 탈옥하지 않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내려서면초록 물을흠뻑 들이킬 수 있을 텐데나긋나긋 햇살이 애무해 줄 텐데 이 구실 저 구실출옥을 거부하는 무기수 봄맛을 잃어버린수인에게확꽃불을 질러볼까나. -림(20250410) https://www.youtube.com/watch?v=RKmpp5bXdO4

하루의 불쏘시개

하루의 불쏘시개 임현숙 빗소리 우렁찬 오월의 이른 아침 어제의 부스러기를 씻어내듯줄기차게 쓸어내는 빗살겨울의 입김이 되살아나무릎 담요를 목까지 끌어 덮고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커피로 재채기를 달래며머그잔을 심장에 갖다 대면웅크린 혈관을 일으키며뭉클하게 쓸어내리는 검은 빗살 다시 못 올 오늘에불쏘시개를 던져 주고 있다. -림(20250519) https://www.youtube.com/watch?v=20InWyEfuXo

2025.05.24 밴조선 게재/오월이 오면

오월이 오면 임현숙 어머니를 기리는 오월이면하늘에 어머니가 바람으로 다녀가십니다꽃을 피우는 따스한 손길로내 이마를 쓰다듬으며수고했다 장하다 다독이십니다훅 코끝에 감겨오는 살냄새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댑니다어머니는 봄처럼 푸른 꿈을 낳으시고산처럼 든든해라 강처럼 푸르러라세상에 이로운 이름으로 기르셨습니다가슴에 카네이션 달아드리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꽃 대신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아 드릴 텐데'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귀청을 때립니다어머니'있을 때'의 뜻 외면하고 살아가신 후에야 청개구리처럼 웁니다언제나 겨울에 살던 어머니요람 같은 오월의 바람을 당신께 돌려드리니그곳에서 마냥 봄날을 누리시다가 다시 올 오월엔 새빨간 장미로 피어나세요. -림(20250506)

봄빛 여울지는 피트강 언덕에서

봄빛 여울지는 피트강 언덕에서 임현숙 서울의 봄을 두고 온 지 어언 스무 해막내의 유년이 껑충거리고 두 딸의 사춘기가 들썩이던돌담 높은 이층집도 두고 왔네 삼백예순 날 칭얼거리던 편두통을 늙은 감나무에 던져주고일영 밭둑에서 봄을 캐던 고운 벗들과의 시간도 훌훌마음 깃 여미고 떠나왔지 강 건너 불빛 북적거리는 한강 자리에달빛 퍼런 프레이저강이 고즈넉이 흐르네응급실을 드나들던 머릿속이 말개지고내 생의 봄날인 시詩를 만나고그늘진 바람이 젖은 마음마저 말려주었던 치유의 땅 밴쿠버돌부리에 차이고 엎어지면서 살아내야 했기에 오뚝이로 걸어온 길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갈 것이네 물안개 아침을 여는 피트강이 프레이저강으로태평양으로 흘러 흘러저 멀리 동해로 가네봄빛 여울지는 피트강을 따라가면 서울의 봄을 만날까 두고 ..

오월이 오면

오월이 오면 임현숙 어머니를 기리는 오월이면하늘에 어머니가 바람으로 다녀가십니다꽃을 피우는 따스한 손길로내 이마를 쓰다듬으며수고했다 장하다 다독이십니다훅 코끝에 감겨오는 살냄새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댑니다어머니는 봄처럼 푸른 꿈을 낳으시고산처럼 든든해라 강처럼 푸르러라세상에 이로운 이름으로 기르셨습니다가슴에 카네이션 달아드리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꽃 대신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아 드릴 텐데'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귀청을 때립니다어머니'있을 때'의 뜻 외면하고 살아가신 후에야 청개구리처럼 웁니다언제나 겨울에 살던 어머니요람 같은 오월의 바람을 당신께 돌려드리니그곳에서 마냥 봄날을 누리시다가 다시 올 오월엔 새빨간 장미로 피어나세요. -림(20250506) https://www.youtube.co..

사월에 머물다

사월에 머물다 임 현 숙 말랑말랑한 초록이 출렁이는사월은첫사랑에 설레는 소녀 봄을 그린다면 푸른 풀과 나무를 그리고 싶다 비단 바람 여린 풀밭을 어슬렁거리고 이파리에 배부르게 내리는 햇살 실개천엔 송사리 떼 뻐금거리는 사월 이맘때 첫사랑 첫 마음 머무는그 풍경 속에 뭉게구름 되어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림(20130415) https://youtu.be/2kbVltVfDzg

사월 연가

사월 연가 임현숙   연두 물 몽글거리는 사월은 마른 가지 살 오르며 봄날이 무르익어요. 어제만 해도 아장거리더니 뛰어다니네요. 민들레 꽃대궁 쑥 올라오듯 척박한 마음밭에도 씨앗 하나 터져 나와 해묵은 이름의 안부를 묻고 있어요. 안녕, 잘 지내나요. 풀꽃으로 스쳤다가 꽃나무가 된 우리, 봄날이 오고 또 와도 속절없이 꽃 피고 지겠지요. 꽃바람 말괄량이처럼 팔랑거리면 그냥 당신은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벚꽃처럼 후르르 피었다가 꽃비에 그리움 홀짝이기로 해요. 꽃물결 아지랑이 지는 거리에 서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왜 사월이 잔인한가를. -림(20250405)  https://www.youtube.com/watch?v=ER26Gg9mv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