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80

2023년 제8호 밴쿠버문학 수록

섣달그믐 밤에 섣달그믐 돌아온 탕아처럼 예배실로 들어갔다 복음송도 새롭고 찬송가 가락도 변하고 따라 부르는 음성엔 뜨거움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에 너무 멀어진 생명 시냇가 얼어붙은 심장이 가벼운 입술로 송구영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눈이 하얗게 길을 덮고 있었다 새해라는 백지 위에 회개의 첫 발자국 선명하게 찍으라는 듯 따라오며 주홍빛 그림자를 자꾸 지우고 있었다. -림(20151231) 그래요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 하나 목숨에 붙여 주셨어요 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 통장인데요 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 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세상만사가 나는 예외란 듯 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2024.1.5. 중앙일보 기고/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 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 되새김질하곤 했기에 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 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 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 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가을 빈 벌판에서 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 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 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 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 첫사랑 같은 새날을 맨발로 마중합니다...

2023.11.18. 밴조선 기고/가을날

11월 18일 토요일 2023 by Vanchosun - Issuu 11월 18일 토요일 2023 issuu.com 가을날 임현숙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하늘빛 깊어져 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 심연에 묻힌 것들이 명치끝에서 치오른다 단풍빛 눈빛이며 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 말씨 곱던 그녀랑 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 다시 만난다면 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 나무 빛깔에 스며들며 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 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 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2023.0512/밴중앙 게재/세월 강가에서

[밴쿠버문학] 세월 강가에서 > LIFE | 밴쿠버 중앙일보 (joinsmediacanada.com) [밴쿠버문학] 세월 강가에서 - 밴쿠버 중앙일보 임 현 숙(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갈대숲을 지나는 바람처럼흘러가는 세월 강물벌거숭이 시절이 까마득한 바다로 가고연분홍빛 꿈은 물거품이 되었네 꽃이 피고 지고낙엽 구르고 눈 내 joinsmediacanada.com

월간문학/2023년 5월호 수록-용서라는 말의 온도

용서라는 말의 온도 임 현 숙 당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불꽃으로 돌진하는 불나방이었습니다 오롯이 한 빛만 향해 파닥였지만 회전 벨트처럼 늘 제자리였던 길 때론 외로웠고 때론 슬픔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 상처 입던 길 사랑은 무지개색이라 말하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이글거리던 불꽃에 날개는 얼어버리고 비로소 그 길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더는 그립지 않아도 되는 일 더는 아프지 않아도 되는 일 이제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일 한 때 사랑이라 이름하던 그 길에 '용서해'라는 팻말을 박아 놓고 돌아오는 사람 그 말의 소름에 뜨거웠던 기억의 고리마저 고드름꽃이 피어납니다.

2022.11.05 밴조선 게재/그래요

그래요 임현숙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을목숨에 붙여 주셨어요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데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한 그루도 잘 돌보지 않으면푸른 이파리 벌레 먹고 갈변하듯이먹물 같던 머리 하얀 서리꽃 밭인 지금제멋대로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에요소화제 한 번 안 드시던 시어머니팔십 오수를 누리다 하늘로 가셨는데내 통장 잔고는 얼마나 될까요 여름을 지나며 옷 서랍을 정리하는데입지 않고 그냥 낡고 있는 옷들 위로올해 산 옷들이 거드름 피우고 있어요섬광처럼 꾸짖는 소리 들려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단다.' 그래요허리 꺾인 세..

2022.09.02 중앙일보 게재/또 한 번의 생일에

[밴쿠버 문학] 또 한 번의 생일에 > LIFE | 밴쿠버 중앙일보 (joinsmediacanada.com) [밴쿠버 문학] 또 한 번의 생일에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가을 문 앞에서어머니는 낙엽을 낳으셨지바스러질까 고이시며젖이 없어 홍시를 먹이던 어미의 맘반백이 넘어서야 알았네소금 반찬에 성근 보리밥밀 joinsmediacanada.com

제7호 밴쿠버문학 수록/아픔보다 더한 아픔, 가을 기도, 봄비 오시네, 이제, 돌아가려네

제7호 밴쿠버문학 수록/아픔보다 더한 아픔, 가을 기도, 봄비 오시네, 이제, 돌아가려네 아픔보다 더한 아픔 목에 쇠침이 박혔다 설마 했던 그놈이 내게도 들어왔다 대문에 빗장 건 이레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마른 갈대 입술을 열면 작렬하는 쇳소리 한솥밥 식구들은 겉보기엔 나이롱환자 망할 균이 흥해서 우쭐대는 중이지만 1차 2차 3차 저항군이 절대 백기는 들지 않을 것 분연히 항거하는 더운 숨소리 아프다 너와 내가 곁눈으로 눈치 보며 저 건너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 -림(20220116) 가을 기도 수수하던 이파리 저마다 진한 화장을 하는 이 계절에 나도 한 잎 단풍이 되고 싶다 앙가슴 묵은 체증 삐뚤거리던 발자국 세 치 혀의 오만한 수다 질기고 구린 것들을 붉게 타는 단풍 숲에 태우고 싶다 그리하여 ..

밴쿠버문학 제 6호 수록 글/바람이 분다, 서리

밴쿠버문학 제 6호 수록 글/바람이 분다, 서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 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리가 굵어가지만 내 서러운 손바닥은 서툰 삽질에 옹이가 깊어진다 툭 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던 오랜 두통을 치료해 준 은인의 땅 무수리로 살아도 알약에서 놓여나니 천국의 나날인데 이맛살이 깊어지니 미련 없이 떠나온 고향이 옹이를 속속 담금질한다 바람이 분다 실핏줄에 들엉긴 저린 것들이 고향으로 가자고 역풍이 분다. -림(20190820) 2021.09.03. 밴중앙일보 게재 서리 밤새 앓던 아버지의 잿빛 신음이 아침 마당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눈물지었습니다 느지막이 얻은 막내딸 결혼식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

2022년 1월까지 밴조선 게재 시 열람

https://www.vanchosun.com/news/main/frame.php?main=1&boardId=22&bdId=49377&cpage1=4&search_keywordtype=writer&search_title=%EC%9E%84%ED%98%84%EC%88%99 [밴쿠버 조선일보][밴쿠버한인문협/시] 느낌이 깊은 사람이 좋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싶어 냉장고를 뒤진다껍질에 줄만 그으면 수박이 될 지도 모를 단호박이 당첨되었다진초록 속에 감춘 오렌지빛 노랑 속살은 밤처럼 고소하고 홍시처럼 달콤하다울퉁불퉁 www.vanchosun.com https://www.vanchosun.com/news/main/frame.php?main=1&boardId=22&bdId=50052&cpage1=4&search_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