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화장化粧을 하며 / 문정희

라포엠(bluenamok) 2014. 3. 29. 10:31

 

 

 

 

화장化粧을 하며 / 문정희

 

 


입술을 자주색으로 칠하고 나니
거울 속에 속국의 공주가 남아 있다
내 작은 얼굴은 국제 자본의 각축장
거상들이 만든 허구의 드라마가
명실공히 그 절정을 이룬다
좁은 영토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금년 가을 유행 색은 섹시 브라운
샤넬이 지시하는 대로 볼연지를 칠하고
예쁜 여자의 신화 속에
스스로를 가두니
이만하면 음모는 제법 완성된 셈
가끔 소스라치며
자신 속의 노예를 깨우치지만
매혹의 인공 향과 부드러운 색조가 만든
착시는 이미 저항을 잃은 지 오래이다

시간을 손으로 막기 위해 육체란
이렇듯 슬픈 향을 찍어 발아야 하는 것일까
안간힘처럼 에스테로더의 아이 라인으로
검은 철책을 두르고
디올 한 방울을 귀밑에 살짝 뿌려 마무리한 후
드디어 외출 준비를 마친 속국의 여자는
비극배우처럼 몸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