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이 외 수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7.15
나비수건 - 어머니학교 4/이정록 나비수건 - 어머니학교 4 이정록 고추밭에 다녀오다가 매운 눈 닦으려고 냇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몸체 보시한 나비 날개, 그 하얀 꽃잎이 살랑살랑 떠내려가더라. 물속에 그늘 한 점 너울너울 춤추며 가더라. 졸졸졸 상엿소리도 아름답더라. 맵게 살아봐야겠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7.11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7.10
당신 당신 혜원 박영배 꽃을 앞세운 가지마다 산등성이 구비구비 붉은 울음으로 피어나고 우둑우둑 빗소리 봄을 물고 앞서 가는데 내가슴 빈자리는 늘 당신을 찾습니다 사랑, 그리움, 당신은 그곳에서 맴을 돌고 나는 이곳에서 부질없는 빗소리만 듣습니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7.02
자화상-서정주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꽂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6.28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기를 만났다 - 혜원 박영배 소나기를 만났다 굵은 빗줄기가 산이며. 들이며 고추밭으로 여치를 잡듯이 구석구석 뒤지고 있다 낮잠 자던 고라니도 대밭에 숨은 바람도 빗발치는 CAL 50* 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일단 잡히면 누구나 다 후줄근한 포로가 되어야 한다 나도 산간에서 완..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6.08
숲 속의 비망록 숲 속의 비망록-문정희 여름 숲 속 창작 교실에 갔다가 그만 폭우에 갇히고 말았다 외딴 흙 집 알전구에 매달려 박쥐와 함께 온 밤을 퍼덕이었다 충혈된 짐승털 냄새를 풍기며 폭우가 밤새 달려들었다 이윽고 안개가 베일을 벗자 어디서 걸어왔는지 희뿌연 아침이 이마를 드러냈다 풀들..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6.06
유리창을 닦으며 유리창을 닦으며-문정희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져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져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31
알몸의 시간 알몸의 시간-문정희 옷 한 벌 사려고 상가를 돌았다 내게 맞는 옷은 좀 체 없었다 조금 크거나 작거나 디자인이 맘에 안 들었다 세상의 옷들은 공주나 말라깽이 배우들을 위한 것뿐이었다 옷들은 대뜸 뚱뚱한 내 몸매부터 비웃었다 슬며시 부아가 나서 한 번 입어나 보려고 다리를 넣었다..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29
달팽이 달팽이-문정희 여름에도 얇은 살 얼음을 덮고 사는 속살이 부드러운 누이 미루나무 속잎 피는 강가 코흘리개 동생을 오글오글 등에 업고 진흙 같은 생을 느린 걸음으로 걸어간다 사방에 벼랑은 이리도 많아 마치 출가승처럼 근신하다가 풀잎 끝에서도 곧잘 긴 귀를 뽑아 먼 곳을 바라보..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26
유산 상속 유산 상속-문정희 비밀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폐허 수만 평 아직 잘 지키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그 땅에 태풍 불고 토사가 생겨 때때로 남모르는 세금을 물었을 뿐 광기와 슬픔의 매장량은 여전히 풍부하다 열다섯 살의 입술로 마지막 불러본 아버지! 어느 토지 대장에도 번지..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25
찔레꽃 찔레꽃-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24
모란이 피네-송찬호 모란이 피네-송찬호 외로운 홀몸 그 종지기가 죽고 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 오지 그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코만 베어 온 것 아니냐 머리만 떼어 온 것 아니냐, 이리 투..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5.24
어떤 편지-도종환 어떤 편지/도종환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한 사람의 아픔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숲의 나무들이 시들고 눈발이 몇 번씩 쌓이고 녹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잊은 적이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5.23
그대 오는 길 등불 밝히고-이해인 그대 오는 길 등불 밝히고-이해인 내가슴 깊은 곳에 그리운 등불하나 켜 놓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언제든지 내가 그립걸랑 그 등불 향해 오십시오 오늘 처럼 하늘 빗 따라 슬픔이 몰려오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기쁨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삶에 지쳐 어깨가 무겁게 느껴..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05.22
빈 집1-문태준 빈 집 1 .........................문태준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 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발들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가락을 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5.22
그대 생각-고정희 그대 생각-고정희 아침에 오리쯤 그대를 떠났다가 저녁에 십리쯤 되돌아와 있습니다 꿈길에서 십리쯤 그대를 떠났다가 꿈 깨고 오십 리쯤 되돌아와 있습니다 무심함쯤으로 하늘을 건너가자 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대를 지나가자 풀꽃으로 도장 찍고 한달음에 일주일쯤 달려가지만 내가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18
내가 화살이라면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은 화살촉을 달고 내가..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05.17
향우회 모임에서 향우회 모임에서 혜원 박영배 고향 흙냄새 그리워 한 달에 한 번 까마귀 같은 벗들을 만나보면 긴장 풀린 오장육부가 줄줄 새어 나와 방안은 어느새 투박한 사투리 꽃이 피고 포근한 마음이 고향 집 마당에 들어선다 떠나 온 지 수십 년 세월 알게 모르게 다녀오기도 하지만 마을 어귀 뻐..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