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98

등잔/도종환

등잔 / 도종환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넉넉하기 때문이다넘치면 나를 태우고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욕심부리지 않으면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강영환 시인

강영환 시인 1951년 경남 산청 출생.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중의 꽃」으로 등단. 1979년 《현대문학》 시 추천완료(필명:강산청),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남해」 당선. 저서는 시집으로 『붉은 색들』, 『술과 함께』 『칼잠』, 『불순한 일기 속에서 개나리가 피었다』, 『쓸쓸한 책상』, 『이웃 속으로』, 『황인종의 시내버스』, 『눈물』, 『뒷강물』, 『푸른 짝사랑에 들다』, 『집을 버리다』, 『산복도로』, 『울 밖 낮은 기침소리』 등과 『현대시』, 씨디롬 『블랙커피』, 지리산 연작시집 『불무장등』, 『벽소령』, 『그리운 치밭목』이 있다. 시조집으로 『북창을 열고』, 『남해』, 『모자아래』 등과 산문집 『술을 만나고 싶다』가 있다. 이주홍 문학상, 부산작가상. 하동문학작품상, 부산..

소나기/곽재구

소나기 / 곽 재 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