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아름다운 마침표/신표균

라포엠(bluenamok) 2014. 2. 13. 15:13

 

 

 

 

 

아름다운 마침표/ 신표균

 

 

 

서른 일곱 살 처녀가

가발 머리 곱게 빗고

화장을 고친다

수심에 찬 거울 앞에 서서

솜사탕 같은 아침 물안개 속에

쓸쓸한 미소 짓는다

 

그녀, 웃으며

영정사진을 찍는다

예쁘게 찍어 주세요

엄마가 시집 못 보내고

손 놓은 딸

웃는 모습 품에 안고 살게요

 

환한 얼굴로 울고 있는 그녀

보조개에 고이는

아름다운 마침표들,

주르르르

암병동에 두고 온 민가슴 위로

이별 연습 한다

 

찰깍

카메라 셔터가

검은 눈동자 감춘다

 

                                    - 계간『시와시와』2014 봄호

....................................................................

 

 지난 해『불교문예』가을호에 손택수 시인의 ‘이해인 수녀님의 동백 가지 꺾는 소리’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다. “어떤 꽃가지들은 부러질 때 속 시원하게 부러진다/ 가지를 꺾는 손이 미안하지 않게/ 미련을 두지 않고 한 번에 절명한다/ 꺾는 손이나 꺾이는 가지나/ 고통을 가능한 가장 적게 받도록/ 아니, 기왕에 작심을 하였으면/ 부러지는 소리가 개운한 음악 소리를 닮을 수 있도록/ (중략)/ 암 투병 중인 수녀님이 선물로 동백가지를 끊는다/ 뚝,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치 오랜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세상 뜰 때 내 마지막 한 마디도 저와 같았으면”

 

 이해인 수녀님은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지금 6년째 투병중이시다. ‘뚝’ 동백나무 부러지듯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치 오랜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누구나 갖는 비슷한 바람일 것이다. “비록 두려움에 떨다가도 어느 순간 가장 크고 부드러운 손아귀 속에서 뚝 꽃보다 진한 가지 향을 뿜어낼 수 있었으면” 좀 격이 낮은 비유이긴 한데 시쳇말로 ‘998833’이라 했던가. 99살까지 88하게 살다 딱 3시간만 아프다가 3분 안에 꼴깍 가고 싶다는. 신표균 시인의 ‘아름다운 마침표’도 그런 소망을 드러낸 시라 하겠다. 하지만 시 속의 여인은 ‘서른일곱 살 처녀’가 아닌가. ‘환한 얼굴로 울고 있는 그녀’를 상상으로 그려 보니 기이하게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병상에 누운 모든 병자들은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면서도 무너지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무엇보다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만약에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누추하게는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명 가진 것들의 질서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면서 순하게 소멸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툭’ 동백가지 부러지는 소리의 맑은 음악처럼, 영정사진을 찍는데 ‘찰깍 ●’ 카메라 조리개가 보조개의 볼우물과 겹쳐 닫히는 순간처럼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싶은 것이다. 그저께 한 친구가 짧은 시간 병상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다 무자비한 고통 없이 분홍 꽃잎같은 미소만 남기고 소천했다. 이 또한 억지로라도 '아름다운 마침표'라 그러고 싶다.     

 

 오늘이 ‘세계 병자의 날’이다. 그런 날도 있나 싶겠지만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고자 1992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기념일인 2월 11일을 병자의 날로 제정하여 우리나라에도 가톨릭계 병원을 중심으로 매년 행사를 해오고 있다. 병의 치유 못지않게 그 고통을 품위 있게 견디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서른일곱 살 처녀’의 마침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고통 가운데 불안해하는 모든 병자들과 함께 민초시인 수녀님의 쾌유를 빈다. 민들레 솜털 같은 희망으로 견디시며 우리 앞에 다시 그 환히 웃는 모습 보여주시기를...

 

 

권순진

 

 

 

Winter Light - Sasha Alexeev

'시인의 향기 > 영혼의 비타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의 서곡-노천명  (0) 2014.03.12
나무 / 박재삼  (0) 2014.03.06
내 사람이여/김광석  (0) 2014.02.05
모란 동백-이제하 시, 조영남 노래  (0) 2014.01.28
풍경을 달다-정호승  (0)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