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사는 일은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국수가 먹고싶다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길거리에 나서면고향 장거리 길로소 팔고 돌아오듯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국수가 먹고싶다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어느 곳에선가늘 울고싶은 사람들이 있어마음의 문들은 닫히고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눈물자국 때문에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국수가 먹고싶다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29
거위 - 문정희 거위 - 문정희 나는 더이상 기대할 게 없는 배우인 것 같다 분장만 능하고 연기는 그대로인 채 수렁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오늘 텔레비전에 나온 나를 보고 왝 왝 거위처럼 울 뻔했다 내 몸 곳곳에 억압처럼 꿰맨 자국 뱀 같은 욕망과 흉터가 무의식의 주름 사이로 싸구려 화장품처럼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6.04.27
악보-도종환 악보-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25
밴쿠버 조선일보 기고/2016.4.16(토)-사월 사월 임 현 숙 사월은 거리마다 꽃들의 웃음소리 오일장 봄나물처럼 온통 파릇한 설렘 늙은 나무도 푸른 귀 쫑긋거리네 물빛 하늘엔 하얀 구름 수련처럼 피고 내 마음 황무지엔 꽃불 번지네 아, 사월에는 귀 닫고 눈 감고 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6.04.17
오래된 독서 - 김왕노 오래된 독서 - 김왕노 서로의 상처를 더듬거나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누구에게나 오래된 독서네. 일터에서 돌아와 곤히 잠든 남편의 가슴에 맺힌 땀을 늙은 아내가 야윈 손으로 가만히 닦아 주는 것도 햇살 속에 앉아 먼저 간 할아버지를 기다려 보는 할머니의 그 잔주름 주름을 조..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14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 서수찬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 서수찬 앉은뱅이 밥상 하나 네 다리 중 흔들리는 다리 하나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안 보이는 쪽으로 돌려놓아도 거기 화살처럼 꽂히는 눈들 밥 얻어먹는 내내 내 마음도 테이프를 붙이게 되는데 밥을 다 먹고 난 뒤 밥상이 테이프를 붙인 다리마저 접고 냉장고 뒤..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13
신설동 밤길 - 마종기 신설동 밤길 - 마종기 약속한 술집을 찾아가던 늦은 저녁, 신설동 개천을 끼고도 얼마나 어둡던지 가로등 하나 없어 동행은 무섭다는데 내게는 왜 정겹고 편하기만 하던지. 실컷 배웠던 의학은 학문이 아니었고 사람의 신음 사이로 열심히 배어드는 일, 그 어두움 안으로 스며드는 일이었..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11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나호열 ↓↓아래부터 복사 하세요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출렁거리는 억 만 톤의 그리움 푸른 하늘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혼자 차오르고 혼자 비워지고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그리움의 저수지 머리에 이고 물길을 찾아갈 때 먹장구름은 후두둑 길을 지워버린다 어디에서 오시는가 저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4.09
잊힌 기억일지라도 잊힌 기억일지라도 임 현 숙 쓰레기통 곁에 음료수 깡통이 찌그러져 울고 있다 불그스레한 눈물이 길을 적신다 더는 담을 수 없어 어딘가에 버린 내 옛 기억도 저렇게 서러움을 토하고 있을까 버려진다는 것은 더는 쓸모 없다는 것 잊힌다는 건 그립지 않다는 것 버림도 잊힘도 알알한 상..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6.03.14
벨, 너의 정원은/ Bell, Your garden is full in May 벨, 너의 정원은-오월의 정원 Bell, Your garden is full in May 임현숙(Grace Lim) Translated by Lotus Chung 벨, 너의 정원은 Bell, Your garden is a shelter 길 잃은 별이 머물다 가고 Stars rest there when they lose their way 새벽이슬 알알이 꿈이 영그는 Dreaming grain by grain with dewdrops at dawn 요정의 나라 Like a fairyland 라벤더 .. 나목의 글밭/번역·영어로 소통하기 2016.02.19
우리 사랑, 전설이 되게 하자 /Our Legendary Love 우리 사랑, 전설이 되게 하자 Our Legendary Love (딸의 사랑을 지켜보며) (For my daughter on her wedding day) 임현숙 Poem by Grace Lim/Translation by Bong Ja Ahn 날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이 I see love in your gentle eyes 행복으로 차오르면 Brim with happiness. 두근두근 설레는 내 맘 들리지 Can you hear my fluttering heart too? 사.. 나목의 글밭/번역·영어로 소통하기 2016.02.19
맨발 - 문태준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2.16
마음 - 곽재구 마음 - 곽재구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붓습니..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2.10
동시/섣달그믐 - 송근영 섣달그믐 - 송근영 새해 아침 차례상 앞줄 왼쪽 두 번째에 놓을 밤을 깎으시는 할아버지 손자가 마주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할아버지 눈썹은 왜 희어지셨어요?" "오늘 같은 섣달 그믐에 잠을 자서 그렇단다." "저도 오늘 밤에 자면 눈썹이 한 올쯤은 희어지겠네요." "암, 그렇다마다." 한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2.08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요즘 깍두기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오이무침 두께가 들쑥날쑥 입니다. 어제는 양파를 썰다가 손을 베었는데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 아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묵은 무를 썰다가 구멍이 숭숭한 내 몸을 보았습니다. 저녁 밥상에 국그릇을 올리는데 남편이 또 반찬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7
목련꽃 지던 날- 김은우 목련꽃 지던 날- 김은우 외할머니는 뒷마당 오래된 목련나무에 병든 딸의 목숨 줄 이어놓고 날마다 애타는 소원 하나씩 가지 끝에 달아 놓았다 할머니가 삐뚤삐뚤 쓴 종이 하나가 뒷마당 유난히도 붉은 우듬지에서 펄럭일 때 아픈 허리는 우물가에 앉아 통증도 잊은 채 커다란 가마솥을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26
얼굴 반찬 - 공광규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5
시를 쓸 때 - 피해야 할 것 / 습득해야 할 것 x = 피해야 할 것 0 = 습득해야 할 것 x 기교주의, 거친 일상적 내용, 짙은 현실주의 (위의 것들은 시의 감동을 줄인다) x 간접적이고 상징적이고 때로는 비틀어지고 알쏭달쏭한 표현만이 시라는 관념은 세기말적인 거에 불과하다. x 사상과 실천의 심화과정 없이 주관적으로 머릿속의 관념.. 정보 창고/창작 도우미 2016.01.22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요즘 깍두기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오이무침 두께가 들쑥날쑥 입니다. 어제는 양파를 썰다가 손을 베었는데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 아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묵은 무를 썰다가 구멍이 숭숭한 내 몸을 보았습니다. 저녁 밥상에 국그릇을 올리는데 남편이 또 반찬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