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거위 - 문정희

라포엠(bluenamok) 2016. 4. 27. 00:53


        거위 - 문정희 나는 더이상 기대할 게 없는 배우인 것 같다 분장만 능하고 연기는 그대로인 채 수렁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오늘 텔레비전에 나온 나를 보고 왝 왝 거위처럼 울 뻔했다 내 몸 곳곳에 억압처럼 꿰맨 자국 뱀 같은 욕망과 흉터가 무의식의 주름 사이로 싸구려 화장품처럼 떠밀리고 있었다 구멍 난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차갑고 더러운 물을 숨기며 시멘트 숲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다 들켜버렸다 빈틈과 굴절 사이 순간순간 태어나는 고요하고 돌연한 보석은 사라진 지 오래 기교만 무성한 깃털로 상처만 과장하고 있었다 오직 황금알을 낳기 위해 녹슨 철사처럼 가는 다리로 뒤뚱거리는 나는 과식한 거위였다 ㅡ《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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