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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