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5/01 16

내 안에 우는 돌이 있다/문정희

내 안에 우는 돌이 있다 문정희  내 안에 우는 돌이 있다절벽에서 절벽으로 뛰어다니는소나기가 있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찍고 싶은데눈 뜨면 안 보이는울부짖음이다 점토의 빛깔로 다가오는 저녁내 안에 우는 돌에다 물을 준다돌의 키는 자라무엇이 될 수 있을까허공에서 허공으로 뛰어다니는새가 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우는 돌이 있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찍고 싶은데싱싱한 비명은 찍을 수 없다         — 시집 『그 끝은 몰라도 돼』 2025.1

그런 날에는

그런 날에는 임 현 숙  개미 발소리가 들리는 날*까똑 소리가 기다려지는 날딸의 귀가를 재촉하는 날잘 정리된 서랍을 다시 뒤적이는 날그런 날엔 애꿎은 추억을 벌씌운다 *까똑까똑 말 거는 것이 귀찮은 날말벗이 되어주는 딸아이가 성가신 날넋 놓고 있고 싶은 날그런 날엔 내게 타이른다산다는 건 낡은 추억을 깁는 게 아니라싱싱한 추억거리를 짓는 거라고.  -림(20210609)*카카오톡 알림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jUgmEOcxsBw

겨울비에 베이다

겨울비에 베이다  임현숙  하늘도 땅도 물바다댓살 같은 겨울비 어느 휠체어 바퀴에 처덕거리다가내 무릎에 와 가시로 박힌다 기울은 세월의 미운 짓가슴 저며오는 한기 언제였던가 겨울비가 마음 데우던 시절우산 안에서 더 가까워지던 우리비보라 칠수록 더운 김 오르고 첨벙거리며 달려도 짱짱하던 무르팍이여 그날처럼 우산을 펴 들었지만빗방울 둥근 칼날 가슴에 붉은 길을 낸다 빗소리는 미안하다 하고성난 무릎따스한 기억에 기대어구들목 찾아 터덜거리는데 건널목이 십 리 길인 듯 푸른 신호 깜박깜박빗줄기 쫓아오며 신들린 칼춤을 추어대고.  -림(20241215) https://www.youtube.com/watch?v=t6FjZUKG54M

새해를 맞으며

새해를 맞으며 임 현 숙   묵은 달력을 내려놓습니다내 마음처럼 무게가 천근이어요장마다 빼곡한 사연들을 되새겨보니복덩어리가 수북합니다가진 게 없다고 빈손이라고 하늘에 떼쓰던 두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가붓한 새 달력을 그 자리에 둡니다내 마음도 새 달력 같습니다오늘또 오늘 쌓일 복 더미 생각에손등에 푸른 핏줄이 더 불거집니다. -림(20201223) https://www.youtube.com/watch?v=nPHjwWkV5U8

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되새김질하곤 했기에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이별에 익숙해져야 할가을 빈 벌판에서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첫사랑 같은 새날을맨발로 마중합니다. -림(2024 새해를 맞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