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을 주는 사람 임 현 숙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건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가슴에 꽂혀 시들기 전까지 날마다 바라보며 속삭인 추억이 깊은 곳에 고여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직 향기로운 꽃이라는 말이다 네 가슴을 물들일 수 있다면 붉은 장미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4.06
사월은 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사월은 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임 현 숙 사월은 거리마다 꽃들의 웃음소리 오일장 봄나물처럼 온통 파릇한 설렘 늙은 나무도 푸른 귀 쫑긋거리네 물빛 하늘엔 하얀 구름 수련처럼 피고 내 마음 황무지엔 꽃불 번지네 아, 사월에는 귀 닫고 눈 감고 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4.02
풀잎보다 작은가 보네 풀잎보다 작은가 보네 임 현 숙 키 작은 봄은 여린 풀잎을 먼저 깨우고 하늘 향해 쑥쑥 자라지 눈높이 나무에 쫑긋한 초록 잎이 싱그럽고 올망졸망 꽃들이 새살거리네 저 키 큰 나목에 닿아 푸른 옷을 입히면 높새바람 잡아타고 하늘 높이 달아나겠지 아무래도 난 풀잎보다 작은가 보네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4.01
이따금 이따금 임 현 숙 똑딱 똑딱 메트로놈처럼 하루를 산다 똑딱 똑딱 시계추처럼 하루가 간다 이따금 뚜욱 딱 뚜우 딱 고장 난 시계 나라에 머물고 싶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25
진달래 진달래 임 현 숙 무장 무장 부푸는 그리움 무더기로 피웠습니다 화사한 봄 숨결에 부끄러움도 잊고 차마 못 한 말 꽃잎에 물들였습니다 당신, 모른 듯 아니 보셔도 지나는 길목에서 수줍어 수줍어 발그레 웃겠습니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22
봄이어요 봄이어요 임현숙 오늘은 숲을 끼고 뚜벅뚜벅 걸었어요 물소리가 웅성거리는 다리 아래엔 봄이 묵은 때를 밀고 있었어요 찌들은 시름이 졸졸 흘러가고 눌어붙은 게으름이 퉁퉁 불어 떠가네요 개여울이 숲을 안고 신바람이 납니다 싱그런 추임새에 그만 길 가던 이유를 까먹었어요 하염없이 샛강을 내려다보다 암초에 부딪힌 봄바람을 꿀꺽했지요 풍선처럼 부푸는 이 맘을 어찌하나요 이런저런 볼일 많은 날인데 줄 끊긴 풍선 되어 두둥실 하늘을 날아갑니다. -림(20130323)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17
봄비에 젖으면 봄비에 젖으면 임 현 숙 자박자박 봄비 내리는 길 지난겨울 그림자 해맑게 지우는 빗방울 소리 흥겨워 발걸음도 춤을 추네 반 토막 난 지렁이 재생의 욕망이 몸부림치고 시냇가 버드나무 올올이 연둣빛 리본 달고 나 살아났노라 환호성 하네 늙수그레하던 세상 생명수에 젖어 젖어 기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13
봄빛이 물들다 봄빛이 물들다 임 현 숙 겨우내 눅눅한 마음의 창에 봄이 제비처럼 날아와 지지배배거린다 창가를 기웃거리는 따슨 볕의 간지럼에 눈을 감으면 그대 숨결 메아리 울리고 서로 먼저라 옥신대는 꽃들의 아우성에 귀가 커진다 봄은 소리로 다가와 진달래 몽우리 방긋방긋 마음 창가 연둣빛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12
서설(瑞雪)-3월에 내리는 눈 서설(瑞雪)-3월에 내리는 눈 임 현 숙 그리 떠나기 아쉬운가요 하얀 그리움 심어놓고 영영 돌아선 줄 알았는데 이리 마음 흔들러 다시 오셨나요 목련 가지에 봉긋봉긋 해후의 설렘 등 밝히고 그대 품에서 춤을 춥니다 이 순간을 꽁꽁 매어두고 싶지만 봄 햇살 사알짝 미소 지으면 사르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3.06
모닥불을 지피며 모닥불을 지피며 임 현 숙 새해 벽두부터 감기에 붙잡혔다 콜록거리느라 잠이 저만치 달아나버려 주섬주섬 일어나 앉는다 길도 곤히 잠든 한 밤 불티 날리는 소리처럼 목을 조르는 기침 소리만이 고요를 깨운다 삶이란 게 모닥불 같아서 날마다 솜털 같은 목숨을 불쏘시개로 사르며 활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2.22
2월 어느 날 2월 어느 날 임 현 숙 밤새 울다 지친 하늘이 시름겨운 낯빛으로 눈 뜨는 아침 비상하는 작은 새처럼 잿빛 하늘을 날아 구름을 걷고 봄을 기다리는 산야에 푸른 햇살을 고루 퍼주고 싶다 이웃 할머니 하회탈 얼굴에도 죽은 듯 웅크린 꽃망울에도 곰팡이 슨 뉘 마음 벽에도 싱싱한 봄볕을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2.15
안개가 그리는 풍경 안개가 그리는 풍경 임 현 숙 짙은 안개는 암행어사이다 감찰이 깊어질수록 어수선한 세상은 먹통이 된다 굉음을 내며 오르내리던 자동차 눈 부라리며 오금 저리고 날랜 발길 굼벵이 된다 볼 꼬집던 바람 감쪽같이 숨어 버려 안개의 축축한 추궁만이 집요하다 날 속속들이 들여다보려 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2.11
질투 질투 임 현 숙 사랑 앞에 우아하던 그녀가 오물통에 빠졌다 생각은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걸 태연한 척했을 뿐 의심이 부글부글 끓어 푸르딩딩 독이 올랐다 사랑은 소유 아니라고 집착 아니라고 믿음이라고 거짓을 앞세워 미소 짓더니 질투가 눈꼬리에 날을 세웠다 질투는 도마뱀 꼬리 같..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2.06
새 달력에 바란다 새 달력에 바란다 임 현 숙 폭죽 소리 달려와 새날을 열며 내게로 네게로 복을 쏟아붓는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더 바라는 건 죄이지만 새 달력에 간절한 바람을 담는다 이방인의 멍에 벗고 가로등 소곤대는 서울 밤거리를 거침없이 모국어로 떠들며 걷고 싶다고 느림보 밴쿠버 시계 뺑뺑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1.29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임 현 숙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대 오시나 기다려져요 사박사박 발소리에 빈 마음 울렁거려요 머언 그리운 곳에서 너울너울 하얀 목화꽃 겨울잠 든 나목 추울세라 꽃이불 보드라이 감싸주네요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대 오신 듯 반가워 목화꽃을 살포시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1.26
잃어버린 겨울 잃어버린 겨울 임 현 숙 유리창이 꽁꽁 얼고 마당 세숫대야에 손이 쩍 달라붙던 그해 겨울 등굣길 코밑엔 고드름이 열리고 스타킹으로 감싼 종아리가 알알하도록 추웠네 동동 발 구르다 올라탄 만원 버스는 사선으로 몸이 기울어져도 따스해서 좋았지 얼었던 양 볼은 발갛게 물들어 옆에..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1.24
차림표처럼 차림표처럼 임 현 숙 은발의 부부가 차림표를 보고 있다 샐러드부터 갈비찜까지 부부의 연대표처럼 울긋불긋하다 파릇한 샐러드 연애 김밥처럼 한이불을 덮던 날부터 바삭바삭 고소한 치킨 신혼을 지나 콩나물 버섯 같은 아이들과 쓱쓱 싹싹 비빔밥 시절을 지나며 사는 맛을 알았고 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1.08
내 나이 세어보니 내 나이 세어보니 임 현 숙 먼지 한 톨도 쓸고 닦아야 후련하고 자정 넘어 잠들어도 동 트기 전 일어나던 바지런함이 눕자 눕자 꼬드깁니다 아침에 먹는 알약을 먹었는지 아리송해 어느 날은 빼 먹고 어느 날은 또 먹어서 인제 먹고 나면 동그라미 칩니다 자식에게 떵떵거리던 목소리 기..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1.03
야누스 십이월 야누스 십이월 임 현 숙 십이월 거리엔 산타 썰매 소리 빨간 루돌프 콧방울이 지갑을 열라 유혹하는데 그대의 시선은 자선냄비에 던져지는 동전처럼 길바닥에 떼구루루 십이월은 야누스 빛과 그림자 고난과 생명의 십자가 삶의 등짐이 버거워 영혼마저 팔 듯한 가여운 사람, 사람아 부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2.22
결혼기념일 즈음 결혼기념일 즈음 임 현 숙 설렘과 아쉬움의 날들을 접어 원앙새 보금자리를 틀었지요 동지처럼 적군처럼 세월이 흐른 후 두 눈에 콩깍지 벗겨지고 달콤하던 밤 밋밋해졌어도 지갑 속에 낡은 신분증처럼 늘 품고 사는 부부라는 사이 입덧으로 삐쩍 말라 누워있을 때 먹고 싶다는 빈대떡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