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4/08 8

골목길 가로등

골목길 가로등 임현숙  모두가 퇴근하는 시각 출근한다모자를 푹 눌러쓰고 늘 같은 자리에 서서침침한 눈으로 어둠을 밝히며습관처럼 발소리를 매만진다취업에 고민하는 젊은이의 처진 어깨긴 그림자로 끌어안고곤드레만드레 아저씨 걱정스레 쏘아보며고물 줍는 할머니 굽은 등이 밤하늘보다 더 무거워빈 수레바퀴를 굴리는 눈길딸아이가 돌아올 무렵이면 두 눈 부릅뜨고더욱 열심히 안경알을 닦는다허름한 하루하루 말없이 다독이다 보면이따금 슬퍼져 눈을 껌뻑인다그들이 곤히 잠든 후에도골목을 지키는아버지의 자상한 눈빛이다. -림(20170812) https://www.youtube.com/watch?v=Pg-j66dnc7I

고수머리의 설움

고수머리의 설움 임현숙  그녀 머리카락은 반곱슬에다 울창한 솔숲이었다멋 내기를 알던 날부터얼굴보다 머리 매만지기에 공들였는데세월이 허리 굽고 나서솔숲에 바람길 나고 빗질 한 번이면 다소곳하다그녀 딸이 그녀를 똑 닮아속절없는 유전자 타령에 입이 툴툴댄다'나도 긴 머리 찰랑찰랑하고 싶어요'미안한 마음을 매직 파마로 달래주기도 하지만얼마 안 가 다시 돌아오니  날마다 전기 고문 비명 윙윙거리고화상 입은 곱슬은 더욱 까칠해진다세월을 따라가다 보면 고분고분해지련만 꽃나이에 멋 내고 싶은 설움이머릿결 따라 구불구불 흐른다   그녀는 딸의 솔숲을 쓰다듬으며 웅얼거린다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불러내고 있다.  -림(20240716) *알라딘 램프의 지니: 디즈니 영화, '알라딘'의 등장인물로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갈증

갈증 임현숙   땡볕이 마그마처럼 흘러내려 아름드리 산이 불산이다불길은 마을을 삼키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천재여도 인재여도 가문 여름 탓이다 강물도 흐름이 굼뜬 나날에어컨 바람 속에서한여름을 보내는 시심도 달구비를 기다린다 후두두둑반가운 빗방울 후둑이는 아침노랗게 시름하던 풀잎 생글거리고저 앞 강물도 거푸거푸 빗물을 받아먹는다 여름을 식히는 말발굽 빗살에목타던 푸른 것 게걸스러운데꽃 지고 그루터기만 남은 고목의 시심은불붙지도 젖지도 않는 모래사막 한 사흘 밤낮 들이키면 젖어 들까달아나려는 달구비의굵은 종아리를 부여안는다.  -림(20240729) https://www.youtube.com/watch?v=XsO-iCsvCr8&t=28s

내 유년의 골목길

내 유년의 골목길  임 현 숙     내 유년의 골목길은 놀이터술래잡기 고무줄놀이 까르르 깔깔옷은 꼬질꼬질해도 마음은 아라비아 부자였다어린 발자국 집으로 돌아가면 구뜰한 냄새 가장을 반기고뿌연 외등 깜박이며 연인들 입맞춤 눈 감아 주기도 했다밤 깊어 출출할 무렵 부르잖아도 찾아오는 야식 배달메~밀~~묵 찹~쌀~~떡~~~좁은 골목길은 고릿하지만 정겹고 은근한 멋이 있었다세월이 무심히 흘러 찾아간 그 골목엔유년의 웃음소리 대신 자동차가 거드름 피우고 있고하늘로 향하는 욕망이 빚은 건물 창마다 옛 시절 흐논다허우룩해 멈춰 선 귓가에 메아리치는 풀잎피리 소리   포장도로 저만치서 어린 발소리 달려온다.   -림(20190826)  https://youtu.be/A16zUdbg6UU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임현숙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어린 날골목길이 미어지라 몰려다니며전봇대에 술래 세워소리 높이 외쳐 하던 놀이 술래 몰래 다가가기굼벵이라서 잘 들켰지 어른이 되어선세월과 둘이 놀이하며 늘 들킨다내일은 이기리라 다짐해도내일은 언제나 내일일 뿐 오랫동안 술래인 세월은조롱하듯 히죽거리지만 이번엔 어림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오늘은 꼭꼭내가 이긴다. -림(20240704)

비구름의 바람

비구름의 바람  임현숙             어제 물을 너무 마셨나 봐내 몸이 하늘만큼 불어났네회칠한 천장 같아 파란 얼굴 다 가렸다고 하늘이 울어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바람도내 발아래서 빙빙 도네 눈물 젖은 꽃 이파리노려보는 그믐달 눈초리로내 몸을 찔러 줄래풍선 로켓 되어 날아갈게 하늘 눈물 그치고파랑 햇살 폭포처럼 쏟아지면난 몽글몽글 양 떼 옷 입고하늘 목장에서 뛰어놀 거야. -림(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