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우리 11월의 우리 임 현 숙 비어가는 11월 햇살이 짧은 그림자를 거두면 한 뼘 멀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이 밀고 당긴다 멀어진 만큼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 바람 든 무속처럼 한여름 정오의 사랑이 지고 있으므로 슬퍼하지는 말자 꽃이 져야 씨앗이 영글 듯 우리 사랑도 가슴 깊은 곳에 단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30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임 현 숙 초저녁, 놀 빛에 물든 보름달이 뒤따라 온다 내 눈에 담을 수 있는 하늘 한 조각엔 언제나 눈동자 하나 낮에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는 눈빛으로 밤이면 눈물 나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하늘이 오늘 저녁엔 예사롭지 않게 눈빛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8
참 쓸쓸한 아침 참 쓸쓸한 아침 임 현 숙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셔야 하는 아침은 사랑니 나던 아픔이 되살아난다 서둘러 나서야 하는 인생길이 내리는 눈 한 송이도 피할 수 없는 허허벌판이기에 커피의 여운을 누리는 호강이 멀기만 하다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는 건 짝사랑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처럼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5
눈을 뜨니 새벽이었네 눈을 뜨니 새벽이었네 임 현 숙 나 홀로 일어나 앉은 시각 길은 아직 눈 뜨지 않았고 하늘도 꿈속을 헤매고 있네 차가운 마룻바닥 낡은 방석에 무릎 꿇어 쥐나던 날들의 소망 세월이 흘러 의자에 앉아 두 손 모으며 흘리던 참회의 눈물 이제는 누워버린 새벽기도에 예배당 종소리도 울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4
가로등 가로등 임 현 숙 모두가 퇴근하는 시각 집을 나선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침침한 눈으로 주위를 밝히며 습관처럼 발자국 소리를 매만진다 아직도 취직 못 한 일류대 졸업생의 처진 어깨 긴 그림자로 끌어안고 곤드레만드레 아저씨 발목 걱정스레 쏘아보며 고물 줍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18
새벽 비 새벽 비 임 현 숙 유리창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 꿈결에 창을 여니 울컥울컥 쏟아지는 빗줄기 어느 누가 날 그리워 이토록 울먹이는가 새벽이 먼동 대신 축축한 연서를 가져 왔네. -림(20150208)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17
가을 나무 가을 나무 임 현 숙 머얼리 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 빈손으로 선 나는 가을 나무입니다 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 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 데구루루 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 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 하나, 둘 이 세상 소유문서에서 내 이름이 지워집니다 노을빛이 익어갈수록 나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10
미련 미련 임 현 숙 깊숙한 어둠 속에서 겨울옷을 끄집어낸다 여름은 더 깊이 갇혔고 아직 철삿줄에 대롱거리는 가을 한 번도 외출을 못한 채 겨울에 밀려나는 가을이 슬프게 바라본다 오랜 기억 속의 네 눈빛처럼. -림(2012)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7
그 추석이 그립구나 그 추석이 그립구나 임 현 숙 그 추석에는 언니 오빠 형부 시누이 다 모여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슬쩍 잃어주며 흥을 돋우는 남편 서로 잘 못 친다고 탓하는 오빠와 형부 그 틈에서 "고"를 외치며 깔깔거리던 나 뒷손이 착착 잘 붙는 시누이 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3
가을의 포로 가을의 포로 임 현 숙 가을은 늑대의 야성을 풀어놓고 여우의 관능에 꼬리를 달았다 은하수에 넘치는 별빛의 그윽한 눈빛도 아침 마당에 은은히 내리던 햇살도 이미 가을의 포로이다 그립다 외롭다 떠나고 싶다 방황하는 영혼의 넋두리가 붉게 물든 이파리마다 총총하다 가을은 침묵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2
10월의 서시 10월의 서시 임 현 숙 앙상한 겨울 숲에선 침묵을 배웠고 연둣빛 너울대는 숲에선 희망을 품었다 이제 나뭇잎이 푸르른 수줍음에서 깨어나 짙은 화장을 하는 가을이다 바알갛게 타는 숲에서 십 년 체증을 불태우라고 시월의 숲이 날 부른다 저녁엔 절망이란 가시에 찔리고 아침이 오면 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1
꿈의 계절 꿈의 계절 임 현 숙 가을을 만나러 온 숲 빈 벤치에 앉으면 누군가 먼저 와 서성인 흔적 마음 둘 자리 찾아 머언 하늘바라기 하다 고독이라는 낙엽이 되었을까 바람 소리 들리지 않아도 가을은 한 잎 두 잎 고운 빛 시어(詩語) 나풀나풀 장시(長詩)를 짓고 꿈결처럼 곁에 와 앉는 임 그림자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28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첫 손주)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첫 손주) 임 현 숙 엄마가 되는 길은 지옥의 불꽃 터널을 지나 응애 소리에 함박꽃 피는 것 무통 주사를 맞고 악악한 고통에서 해방되어 설핏 잠든 딸을 바라보니 내 몸이 그날을 기억하여 몸서리친다 허리가 바서지고 살이 터지는 고통으로 널 낳았는데 주사 한 방..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27
가을 아침에 가을 아침에 임 현 숙 흙빛 까칠한 가랑잎 연둣빛 흔적 자취 없고 발길에 채는 쓸쓸한 낭만 거울 속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여자와 닮았다 오늘도 그 여자 마른 입술에 쓸쓸함이 엿보지 않게 갈바람이 티 나지 않게 살짝궁 불씨를 지핀다 봄처럼 피라고 단풍처럼 도도하라고 주문을 걸면 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22
가을엔 마음의 창을 열어요 가을엔 마음의 창을 열어요 임 현 숙 총총 걸어가는 사람이여 푸른 하늘이 손짓하는 가을엔 마음의 창을 열어요 낮에는 햇살이 놀러 와 불을 지피고 밤이면 별빛 내린 창가 갈잎 소곤대는 이 가을 행복하다 행복하다 마법의 주문을 걸지 않아도 노란 나뭇잎 손잡고 빠알간 단풍 만나러 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20
당신의 집에 묵어가도 될까요 당신의 집에 묵어가도 될까요 임 현 숙 가을, 당신의 집에 묵어가도 될까요 마당쇠 바람이 선들선들하니 살갑고요 국화향 가득한 정원도 아름다워요 사랑채 앞 감나무가 휘어질 듯 주먹 감이 열리고 커다란 곳간엔 거미줄도 황금빛인 풍요로운 당신 집에서 무전취식을 한들 폐가 되진 않..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15
가을 사랑 가을 사랑 임 현 숙 하늘빛도 우울한 어느 가을날 꾹꾹 눌러 삼켜도 눈물이 난다 쓸쓸한 노랫말이 가슴 헤집고 팔랑 이는 나뭇잎은 네 마음 같아 가을이 간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 사랑 가을 닮아 낙엽 되면 서글퍼 가을이 깊으면 사랑도 깊어 단풍 든 산야 바라보면서 감국차 마주하고 오..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15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임 현 숙 가을엔 무엇이 되어도 좋으리 들녘을 나는 한 줄기 바람 논두렁 밭두렁 가 널브러진 들꽃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그 무엇이라도 감사하리 노랗게 빠알갛게 익어 가는 풍경 속에 저무는 노을이어도 행복하리 호흡 있음이 경이롭고 꽃이라 부르는 그대 있..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9.12
나는 노래하려네 나는 노래하려네 임 현 숙 중년의 가을은 정오를 넘은 시각 해 지는 곳으로 해 지는 곳으로 추억을 등지고 저물라 하네 푸르게 싹 터 자라던 꿈과 바알갛게 영글어 수줍던 사랑 시방도 잎맥에 도도록한데 훨훨 지는 잎 되라 하네 가을마저 깊어 기나긴 침묵에 잠들 때까지 나는 노래하려..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