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4/09 4

쓸쓸

쓸쓸 임현숙  푸르름이 바래질 무렵이면무 이파리 여름의 기억을 질끈 동여맨 채시골집 처마 밑에서 늙어 갔다  뒷산에 단풍 가랑잎 지고 찬비 내리면허리 굽은 큰 형님시래기를 삶아 국을 끓였다 코를 긁는 구수한 냄새에눈치 없는 뒷집 영자 엄니초저녁별 앞세워 마실 왔다지 가을은 태평양을 건너와텅 빈 들녘 같은 쓸쓸을 질펀하게 풀어 놓고시린 속 달래려고향의 맛 시래깃국 끓이는데 푸름이 하루를 달구던 내 여름날이 우러나며쓸쓸에 쓸쓸을 더하고행여나눈치 없는 누군가 기다려진다 초저녁별빛도 쓸쓸이다.  -림(20240902) https://www.youtube.com/watch?v=92eh9cWz8Hw

모란

모란 임 현 숙  내 마음속 스란치마어찌 알고 자락 자락펴놓았을까 열 길 내 속엔스란치마 끌며 몸종 거느리는공주가 숨어 살지 스란치마 폭에서 졸고 있는저 반반한 햇살 좀 봐 시샘하듯 달려오는바람의 버선 콧날치맛자락 들치고 냉큼 달아나네 공주의 숨비소리개미 병정들 바람을 쫓고졸던 햇살 날아가며여울지는 초록 윤슬 동화가 살아나는 뜨락에황실의 유월이조곤조곤 피고 있네. -림(20240531) https://youtu.be/rA7bjHMoUCA

주름살

주름살 임현숙  말갛게 세안하고 거울 앞에 앉습니다이맛살 모래톱에 세월이 파랑입니다잔물결 파고마다 들고 나던 이야기삶의 벼랑에서 눈물짓던 날의 기도눅눅한 하늘에 돋아나던 별과의 대화며미움과 용서로 문드러지던 순간들이살모사처럼 빳빳이 고개 듭니다남루하나 진솔했던 생의 일기장을꼼꼼히 손가락 다림질하는데잘라내고 싶은 가시들이 헛기침합니다삶을 한 번만 연습할 수 있다면가시 없는 파랑으로 너울거릴까요 오늘도 모래톱에 파랑은 출렁이고덜 여문 하루가 비릿한 냄새를 풍깁니다부디 부끄러운 이름은 새기지 말자고 앞서가는 머리에 당부합니다. -림(20240817)  https://www.youtube.com/watch?v=YFeRDu7B4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