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연가 함박눈 연가 임 현 숙 눈이 내린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의 첫 고백처럼 뜨겁게 별똥별이 쏟아진다 함박눈이 내린다 네게 준 첫 마음처럼 하얗게 저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순애 다시 그려보자고 펄펄 뛴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2.10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 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 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 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 철든 눈동자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2.04
내 입술에 문패 내 입술에 문패 임 현 숙 꽃길을 걸을 땐 고마워~라는 소리 향기로운 노랫말처럼 귓불을 달구었지 자갈길을 달리며 미안합니다... 빈 마음 구겨지는 말 문패처럼 달고 사네 저 모퉁이를 돌면 신작로가 나올까 오늘도 부끄러운 문패 입술에 달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네. 2016.11.25.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1.30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은 임 현 숙 늦가을 비가 사락사락 눈처럼 내리면 살갗 안에 도사리고 있는 설렘이 부스럼처럼 돋아난다 어둠이 아침을 불러오는지 아침이 저녁을 데려오는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아리송한 것처럼 시구에 홀리지 않았다면 그리움을 몰랐을까나 절절한 그리움이 시혼을 깨웠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1.26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임 현 숙 비어가는 11월 햇살이 짧은 그림자를 거두면 한 뼘 멀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이 밀고 당긴다 멀어진 만큼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 바람 든 무속처럼 한여름 정오의 사랑이 지고 있으므로 슬퍼하지는 말자 꽃이 져야 씨앗이 영글 듯 우리 사랑도 가슴 깊은 곳에 단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1.10
11월에 내리는 비 11월에 내리는 비 임 현 숙 숨겨진 가을 이야기가 쏟아진다 수다스러운 뺑덕어미처럼 후드득후드득 알아들을 수 없는 줄거리가 자동차 지붕 위에서 침을 튀긴다 단풍나무에 은행이 열렸대 글쎄 은행나무가 붉게 물들었다네 지칠 줄 모르는 입담으로 너와 나의 가을이 뒤엉켜 물빛 추상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1.08
고수머리의 비애 고수머리의 비애 임 현 숙 내 머리는 반고수머리에다 숱은 어찌나 많은지 울창한 소나무 숲 같았다 멋 내기를 알던 때부터 얼굴 화장보다 머리 매만지는데 공들여 거울 앞에 서면 투덜거렸었는데 세월의 사태로 반절은 뿌리 뽑혀 이제야 차분하니 보암직하다 둘째 딸이 이런 날 꼭 빼닮..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1.02
낯설지 않은 낯설지 않은 임 현 숙 두드륵 두드륵 낙숫물 소리에 불면의 밤을 포옹해야 하는 가을밤 한여름 햇살이 뜨겁게 뒹굴다 간 자리 주룩 비가 강아지처럼 핥고 있다 단풍은 뚝뚝 지고 빗방울처럼 다정하던 우리 이야기 불티처럼 스러져가며 먼 데 사람은 더 멀어지고 밤은 가까이 더 길어지고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29
깃털 같은 가벼움 깃털 같은 가벼움 임 현 숙 가을 나무가 바람이 탐하고 지나간 욕망의 옷을 벗는다 듬성듬성 빈자리로 파란 하늘이 상큼하고 커피점 창가에 연인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비움의 미학이다 아름다운 정점에서 버릴 줄도 아는 나무처럼 화려한 연회 복을 벗고 산다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20
가을 나무 가을 나무 임 현 숙 머얼리 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 빈손으로 선 나는 가을 나무입니다 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 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 데구루루 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 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 하나, 둘 이 세상 소유문서에서 내 이름이 지워집니다 노을빛이 익어갈수록 나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17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임 현 숙 초저녁, 놀 빛에 물든 보름달이 뒤따라 온다 내 눈에 담을 수 있는 하늘 한 조각엔 언제나 눈동자 하나 낮에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는 눈빛으로 밤이면 눈물 나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하늘이 오늘 저녁엔 예사롭지 않게 눈빛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13
시월은 시월은 임 현 숙 더는 버릴 게 없는데 더는 잃을 게 없는데 가을이 와서 자꾸 잊으라 하네 하지만 아직은 황홀한 시월 감청색 하늘에 흰 구름 꽃 저마다 물드는 잎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바라보는 눈길이 애틋하구나 유행 지난 옷처럼 초라한 이 마음의 나래 다시 한 번 붉게 붉게 물들..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06
마지막 이파리 지다 마지막 이파리 지다 임 현 숙 창밖 미루나무 마지막 이파리 뚝 지던 날 비가 내렸다 나무는 이별이 서러워 주룩주룩 울었다 다 비우고 남은 한 잎만은 화석으로 함께 늙어가기를 언약했건만 붉디붉게 익고 나면 이글거리던 불꽃 사그라지듯 지고 만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떨어진 자리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10.02
다시금 그 해일에 다시금 그 해일에 임 현 숙 가을비에 푸르던 잎새 깊이 물드는데 출렁이던 그리움 썰물 지고 다시 젖어들지 않는 이 가슴이여 하늘의 별이었던 어느 밤 빛나는 눈동자에 가장 사랑스러운 오로라였지만 세상사가 언제나 끝이 있듯 별똥별이 되고 말았지 별이 지듯 그리움도 지고 한 때 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28
더 깊은 울림으로 더 깊은 울림으로 임 현 숙 나무들이 미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르르 마른 잎을 털어내며 가을이 깊어갑니다 내 몸에서도 비늘이 떨어집니다 씁쓸한 추억, 떫은 미련, 부질없는 욕망 지는 건 거름 되어 다시 사는 것이나 잊히기에 서글픈 일입니다 가없는 꿈길을 걷다가 걷다가 당신의 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23
세월 강 세월 강 임 현 숙 나뭇잎이 우수수 지며 세월 강물이 빠르게 흘러간다 벌거숭이 시절이 저만치 흘러가고 연분홍빛 꿈이 먼바다로 갔다 꽃이 피고 지고 새가 울고 낙엽 날리고 눈이 내리는 세월 강 굽이굽이 내가 흘러간다 어머니가 흘러간 그 물줄기 따라 판박이 딸도 허우적거리며 흘러간다 암초에 부딪혀 살이 깎여도 물살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순 즈음 세월 강엔 추억이 아롱지지만 거슬러 갈 수 없는 강물이여 또 한 굽이를 돌아 떠 내려 간 청춘을 따라가며 언젠가 이 지점을 지날 내 아이를 위해 이정표를 세운다 '이곳은 그리움이 깊고 회한이 몸부림치는 늪'. -림 세월 강 임 현 숙 나뭇잎이 우수수 지며 세월 강물이 빠르게 흘러간다 벌거숭이 시절이 저만치 흘러가고 연분홍빛 꿈이 먼바다로 갔다 꽃이 피고 지고 새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17
그 추석이 그립구나 그 추석이 그립구나 임 현 숙 그 추석에는 언니 오빠 형부 시누이 다 모여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슬쩍 잃어주며 흥을 돋우는 남편 서로 잘 못 친다고 탓하는 오빠와 형부 그 틈에서 "고"를 외치며 깔깔거리던 나 뒷손이 착착 잘 붙는 시누이 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15
가을은 옛이야기만 같아라 가을은 옛이야기만 같아라 임 현 숙 가을인가 봐 그토록 뜨겁던 바람이 그믐달의 싸늘한 눈매를 닮았어 가로수 잎이 뱅그르르 바람개비 되었네 가을이 오면 여름이 떠나가듯이 꿈의 내일이 오면 시련의 오늘이 지나간다지 황금 가을이 내게 올 때 제비처럼 박씨 하나 물고 온다면… 금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08
가을엔, 가을엔 가을엔, 가을엔 임 현 숙 파란 하늘 모자 쓰고 황금 햇살 미끄럼 타며 가을이 오면 구석구석 여름의 수고를 쓰다듬어 가여운 참새 허수아비 앞에서 배부르고 빠알간 사과 속에서 애벌레 달콤한 꿈 꿀 테지 가을엔 이 가을엔 일개미도 한 상 차려진 풍경 앞에서 졸라맨 허리띠를 풀 거야.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9.02
풍경(風磬) 소리 풍경(風磬) 소리 임 현 숙 창문가에 소곤거리던 나비 풍경 하나 내 그리움의 더듬이처럼 머언 그리운 소식 뎅그렁뎅그렁 들려주곤 했다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풍경 소리 듣노라면 봄날의 환상에 푸욱 빠져 쓰디쓴 커피가 꿀물 같았다 고대하던 꿈의 계절이 여러 번 지나 풍경도 늙어 뚝 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6.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