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구름이 걷히면 좋겠어요 어서 구름이 걷히면 좋겠어요 임 현 숙 저 하늘 영근 꿈을 따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내리막길이란 말인가요 쉰 고개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지요 신데렐라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때로 숨이 차 계단에 앉아 남은 층계를 세어보기도 하고 행복할 땐 그 자리에 멈추고도 싶었지요 저기..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18
아픔 아픔 임 현 숙 고지서 함에 줄지어 선 고지서들 뽀얀 살결 보드라 한 데 마음은 냉정하구나 하루하루 다가오며 날 쏘아보는 숫자들 잔뜩 독이 오른 것부터 줄 세워 보지만 서로 먼저라 아우성이고 통장은 묵비권 행사 중. 2012.11.30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12
바람이 산다 바람이 산다 임 현 숙 내 오른 무르팍에 세 든 지 두어 해 된 바람이 살다 얼마 전 손목으로 이사했다 여름엔 기척 없이 지내더니 요즘 가시가 돋아 콕콕 찔러대는 통에 밤잠을 설친다 파스로 무장해봐도 기세등등 날 선 바람에 집은 낡아져 가 이방 저방 숭숭하다 집주인 행세하기 전에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10
서리(霜) 서리(霜) 임 현 숙 밤새 앓던 아버지의 잿빛 신음이 아침 마당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눈물지었습니다 느즈막이 얻은 막내딸 결혼식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시린 꽃으로 피었습니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털모자로 백발을 감추듯 자신의 무능력도 깊이 묻고 싶으셨을 내 늙으신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09
눈이 내리면 좋겠어 눈이 내리면 좋겠어 임 현 숙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세상 하얗게 눈이 쌓였으면 좋겠어 아무도 몰래 소복소복 눈길에 그대라는 발자국 찍어 겨우내 발목에 묶어둘 거야 몇 날 며칠 펑펑 쏟아져 세상이 눈 속에 갇히면 시름을 묻어놓고 당신과 나 눈사람 부부 되고 싶어. -림(20121203)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07
안개 도로 안개 도로 임 현 숙 온종일 안개가 마을을 먹고 있다 시골집 굴뚝에서 웅성웅성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꾸역꾸역 달려와 지붕을 삼키고 키 큰 나무를 베어 먹더니 지나는 차까지 꿀꺽한다 잿빛 도로가 덜거덕거리며 어깨를 비튼다 문득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에 업..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06
봄을 그리며 봄을 그리며 임 현 숙 봄맞이하던 오솔길에 낙엽 쌓이고 쓸쓸한 겨울이 노닐고 있네 계절은 제 자리로 돌아오건만 내 삶은 언제나 겨울 울타리 안 연두 봄 찾아와 문 열어주기를 조금만이라는 바람의 끈 부여잡고 기다리고 또 기다릴밖에. -림(20171202)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03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 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 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 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 철든 눈동자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2.02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 임 현 숙 11월의 나무는 공연을 마친 연극배우처럼 관객이 썰물 진 무대 붉은 조명등을 하나둘 끈다 붉은 기염을 토할 때마다 고막을 찢던 탄성 더욱 열연하던 이파리들도 박수받으며 퇴장한 후 못다 한 욕망의 갈색 등 바람의 밭은기침에 아슬아슬한 초침의 그네를 탄다 연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28
내 사랑의 유효기간 내 사랑의 유효기간 임 현 숙 거름망에 똬리를 튼 머리카락 한 줌이 문득 고맙습니다 몇십 년을 거품으로 박박 비비고 수건으로 와락 와락 주물러도 낙엽 지듯 떨어진 자리에 솔가지같은 새순이 다시 숲을 이루니 내 삶의 유효기간 동안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내 생각을 먹고 나뭇잎처럼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26
<동시>배꼽시계 <동시> 배꼽시계 임 현 숙 내 배꼽시계는 하루 세 번 꾸르륵 울 아기 배꼽시계 응애애 한 번도 거르잖고 세 시간마다 꼬박꼬박 응애응애. -림(2017.11.20.)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22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임 현 숙 가을이 그리는 수채화를 보노라면 고즈넉한 풍경 한 점이 애틋합니다 가을이 무르익은 어스름 녘 가로등 그윽이 눈을 뜨고 소슬한 바람 한 자락 갈잎 지는 곳 나처럼 외로운 벤치 하나 쓸쓸함이 황홀한 그 자리에 앉으면 풍경 저편에 사는 추억이 천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20
가을아 안녕 가을아 안녕 임 현 숙 해거름 코스모스가 강변에서도 골목 어귀에서도 감탄사를 보내오며 가을이 왔지요 물빛 높은 하늘 뜨겁게 타오르던 단풍 기분좋게 살랑이던 바람까지 붉은 가을은 크고 작은 느낌표로 그리움에 떨게 하더니 아직도 못다 한 노래 풍경 속에 머무는데 동글동글 마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6
마지막 이파리 지다 마지막 이파리 지다 임 현 숙 창밖 미루나무 마지막 이파리 뚝 지던 날 비가 내렸다 나무는 이별이 서러워 주룩주룩 울었다 다 비우고 남은 한 잎만은 화석으로 함께 늙어가기를 언약했건만 붉디붉게 익고 나면 이글거리던 불꽃 사그라지듯 지고 만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떨어진 자리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4
행복이란 행복이란 임 현 숙 밥상에 자리가 하나 둘 비어갔다 처음에 여섯이더니 팔순 어머니 떠나시고 늘 바쁜 남편과 금지옥엽 두 딸과 삼대독자 금동이 그리고 미련한 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는 건 흐린 밤 별 보기보다 어려워져 혼자 먹는 날이 늘어갔지만 몇 시간이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3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임 현 숙 흰 꽃잎 날리듯 눈이 내리면 그리운 사람이 더욱 그립다 추워서 발그레한 귓불이 앵두처럼 예쁘다며 따고 싶다 속삭이던 당신 심장 천둥소리 들킬까 봐 한 걸음 물러섰지만 그날부터 내 마음은 당신의 포로였지요 해일처럼 밀려와 눈멀게 하던 콩깍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0
그 시간마저도 그립습니다 그 시간마저도 그립습니다 임 현 숙 멀리 고향을 떠나와 나처럼 외로운 건지 길섶에 옹기종기 살을 비비고 있는 조약돌들 비 내리는 날이면 빗물 따라가려 졸졸졸 거리지만 제자리에서 어깨만 들썩일 뿐 동해의 푸른 숨결 서해의 붉은 낙조 칠월이면 울안에 덩굴지던 능소화 마음 자락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6
안녕 안녕 임 현 숙 지인 아들의 부음은 홀로 살아 뒤늦게 발견된 주검 저승사자는 돌연히 어미 심장에 무덤을 팠다 더는 물을 수 없는 안녕 안녕…. 처음과 마지막 인사 딩동딩동 안부의 초인종 사랑과 나란히 늙어 가는 말 하여 오늘도 난 너에게 넌 나에게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딩동 거기 있..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5
첫눈 첫눈 임 현 숙 1. 어느 별 꽃이길래 저리도 눈부실까 엄마 문 열고 나와 세상을 처음 보는 울 아기 눈망울처럼 온새미로 흰여울 2. 그립고 그리워서 찾아온 내 님일까 반가워 안아보면 사르르 사라지니 바라만 보아도 좋은 눈꽃 같은 내 사랑 -림(20131117)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3
솔잎 향기따라 솔잎 향기따라 임 현 숙 오색 무희들 나비춤으로 가을의 연회는 막을 내렸네요 검은 선글라스 카메라 셔터 소리 먼 마을로 돌아가고 바람의 긴 수염 낙엽을 쓸어내면 이제야 눈에 드는 소박한 솔 이파리 칠면조 같은 나무들 들러리로 가을을 춤추게 하더니 꽃 지고 잎 진 앙상한 등성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