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어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01.16
노숙 / 김사인 노숙 /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01.16
김사인 시모음 노숙 /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01.16
달팽이 (외 3편)-김사인 달팽이 (외 3편)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01.16
마지막 산책 마지막 산책 나희덕 우리는 매화나무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쪽은 거의 피지 않았구나, 그녀는 응달의 꽃을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입 다문 꽃망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땅은 비에 젖어 있었고 우리는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통증이 그녀를 잠시 놓아줄 때 꽃..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5.01.02
새-아버지학교 9/이정록 새 아버지학교 9 숫눈이 내렸구나. 마당 좀 봐라. 아직 녹지 않은 흰 줄 보이지? 빨랫줄 그늘 자리다. 저 빨랫줄도 그늘이 있는 거다. 바지랑대 그림자도 자두나무처럼 자랐구나. 아기 주먹만한 흰 새 다섯 마리는, 빨래집게 그림자구나. 햇살 받으면 새도 날아가겠지. 젖은 자리도 흔적 없..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5.01.02
천장호에서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술만이 빛나고 있을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맹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Марк Олич (마..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2.13
당신과 나의 겨울 당신과 나의 겨울 혜원 박영배 우리의 겨울이 있기까지 봄날에는 꽃을 피우기 위한 몸살로 눈물짓던 아픔이 많았습니다 서로 멀리서 가슴 조아리며 밤하늘 은하수 따라 흐르고 흘러 모진 가시밭길을 수없이 걸었네요 하루가 멀다고 주고받는 마음에 안개가 자욱하면 갈 길이 더디고 바..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12.12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켜는 사람 나희덕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2.07
빈 의자 빈 의자 / 나희덕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1.07
푸른 밤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1.07
깊어간다는 것 깊어간다는 것 혜원 박영배 말 없는 시간들이 앞다투어 사라진 길목, 창밖 서성이는 바람 한 점에도 당신 모습 묻어있을까 오늘도 가을을 붙들고 어스름 저녁 길을 나섭니다 그동안 주고받은 언어들이 소중한 인연으로 쌓여 가슴의 길을 얼마나 달려왔는지 저렇게 스러지는 나뭇잎마다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11.04
젖지 않는 마음/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0.28
당신/김용택, 들국화/나태주 당 신 - 김용택 작은 찻잔을 떠돌던 노오란 산국(山菊)향이 아직도 목젖을 간질입니다. 마당 끝을 적시던 호수의 잔 물결이 붉게 물들어 그대 마음 가장자리를 살짝 건드렸지요. 지금도 식지않은 꽃향이 가슴 언저리에서 맴돕니다. 모르겠어요. 온 몸에서 번지는 이 향(香)이 山菊 내음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10.11
가을사랑-도종환 가을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10.09
구절초 꽃-김용택 구절초 꽃/ 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4.10.08
너무 많이 너무 많이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0.07
동행-이상윤 동 행-이상윤 일생동안 사랑, 기쁨 그리고 희망 이 모든 것들은 붙들려 애써 봤지만 쉽게 떠났지 아니, 애원할수록 더 빨리 떠났지 모든 게 다 떠난 후에도 가슴을 조아려 내 곁에 머물러 준 것은 슬픔 그것뿐이더라 Love On The Autumn Road(낙엽위의 연인) - T.S Nam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4.10.07
슬픈 몸-문정희 슬픈 몸-문정희 불 속에서 짐승의 눈알을 보고 돌 속에서 숨 쉬는 사내를 꺼낸 적도 있지만 정작 내 몸은 내가 몰라 오늘은 나약하고 가련한 원숭이가 된다 내 몸을 읽어 달라! 종합병원 기계 앞에 나를 벗는다 밟을수록 깊게 파이는 시간이라는 늪지에 사는 나는 절지동물 절뚝이며 절뚝..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0.01
흩으시든가 괴시든가/고정희 흩으시든가 괴시든가/고정희 하느님 죄없는 강물에 불지르는 저 열사흘 달빛을 거두어들이시든가 어룽어룽 광을 내는 내 눈물샘 단번에 절단내시든가 건너지 못할 강에 다리 하나 걸리게 하.시.든.가 하느님 시월 상달 창틀 밑에 밤마다 우렁차게 자진하는 저 풀벌레 울음을 기어코 흩으..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