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섣달그믐 - 송근영 섣달그믐 - 송근영 새해 아침 차례상 앞줄 왼쪽 두 번째에 놓을 밤을 깎으시는 할아버지 손자가 마주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할아버지 눈썹은 왜 희어지셨어요?" "오늘 같은 섣달 그믐에 잠을 자서 그렇단다." "저도 오늘 밤에 자면 눈썹이 한 올쯤은 희어지겠네요." "암, 그렇다마다." 한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2.08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요즘 깍두기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오이무침 두께가 들쑥날쑥 입니다. 어제는 양파를 썰다가 손을 베었는데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 아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묵은 무를 썰다가 구멍이 숭숭한 내 몸을 보았습니다. 저녁 밥상에 국그릇을 올리는데 남편이 또 반찬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7
목련꽃 지던 날- 김은우 목련꽃 지던 날- 김은우 외할머니는 뒷마당 오래된 목련나무에 병든 딸의 목숨 줄 이어놓고 날마다 애타는 소원 하나씩 가지 끝에 달아 놓았다 할머니가 삐뚤삐뚤 쓴 종이 하나가 뒷마당 유난히도 붉은 우듬지에서 펄럭일 때 아픈 허리는 우물가에 앉아 통증도 잊은 채 커다란 가마솥을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26
얼굴 반찬 - 공광규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5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엄마의 저녁 - 공광규 요즘 깍두기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오이무침 두께가 들쑥날쑥 입니다. 어제는 양파를 썰다가 손을 베었는데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 아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묵은 무를 썰다가 구멍이 숭숭한 내 몸을 보았습니다. 저녁 밥상에 국그릇을 올리는데 남편이 또 반찬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01.22
겨울 기도 2 / 마종기 겨울 기도 2 / 마종기 1이 겨울에도 채워주소서 며칠째 눈 오는 소리로 마음을 채워 손 내밀면 멀리 있는 약속도 느끼게 하시고 무너지고 일어서는 소리도 듣게 하소서 떠난 자들도 당신의 무릎에 기대어 포근하게 긴 잠을 자게 하소서 왜 깨어 있지 않았느냐고 꾸짖지 마시고 당신에게 교..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19
지평선 / 위선환 지평선 / 위선환 삽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긴 팔을 내려 덥석 내 발목을 움켜쥐더니 거꾸로 치켜들고는 털털 털었다 부러진 뼈토막들이며 해묵은 살점과 주름살들이며 울컥 되넘어오는 욕지기까지를 깡그리 내쏟았다 센 털 몇 올과 차고 작은 눈물 한 방울도 마저 털고 나서는 그나마 남..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17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1942∼ )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1942∼ )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16
가슴 아픈 것은 다 소리를 낸다 - 김재진 가슴 아픈 것은 다 소리를 낸다 - 김재진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 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겨울은 더 깊어 호수가 얼고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12
서정시인 - 나태주 서정시인 - 나태주 다른 아이들 모두 서커스 구경 갈 때 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이처럼 모로 돌아서서 까치집을 바라보는 늙은 화가처럼 신도들한테 따돌림당한 시골 목사처럼. <산촌엽서> 문학사상 2002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01.10
김용택 '내 사랑은'중에서 아름다운것을 보면 그대 생각납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내 사랑은 당신입니다….” 김용택 '내 사랑은'중에서 - I was entranced by the beauty get thirsty for you This love is..... You are the love of my Love 'My love is...'by Kim yongtaek 그이가 당신입니다 / 김용택 나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도 나의 사람으로 남..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12.29
낮은 목소리로 - 김후란 낮은 목소리로 - 김후란 이제 남은 한 시간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열기로 하자 잠든 아기의 잠을 깨우지 않는 손길로 부드럽게 정겹게 서로의 손을 잡기로 하자 헤어지는 연습 떠나가는 연습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흰 머리칼 하나 발견하듯 이해의 강을 유순히 따라가며 서로의 눈..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5.12.26
인연서설 - 문병란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5.12.23
시인의 꼬리 - 조경숙 시인의 꼬리 - 조경숙 ​ 시 쓰는 걸 재주라고 하나 이미 글을 봐서 알겠지만 내 재주란 물구나무서기도 못하는데 몇 개의 꼬리를 달고 공중회전을 하여야하나 ​ 어려서 서커스를 볼 때 할머니 그랬다 저렇게 몸을 돌돌 말아 공중돌기를 하다가 작은 상자에 들어가려면 식초를 매..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5.12.18
소망 / 김후란 소망 / 김후란 생애 끝에 오직 한 번 화사하게 꽃이 피는 대나무처럼 꽃이 지면 깨끗이 눈 감는 대나무처럼 텅 빈 가슴에 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 놓고 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단 한 번 눈부시게 꽃 피는 대나무처럼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5.12.16
그대 생각 - 고정희 그대 생각 -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5.12.12
먼길 / 문정희 먼길 / 문정희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5.12.07
그강에 가고 싶다 - 김용택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12.06
그날 아침(외 1편)-나희덕 그날 아침(외 1편) 나희덕 너는 잔에 남은 붉은 포도주를 도로에 다 쏟아버렸다 몇 방울의 피가 가로수에 섞이고 유리조각들이 아침 햇살에 다시 부서졌다 빛의 쐐기들이 눈에 박혔다 핏자국마다 이슬이 섞여 잠시 네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전 너와 함께 듣던 종소리가 들리는 것..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5.12.05
사랑 그대로의 사랑 - 도종환 사랑 그대로의 사랑 - 도종환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속에도 십년이 휠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속에도 당신의 사랑..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