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들꼬들해지기 꼬들꼬들해지기 임 현 숙 산다는 건 세상과의 혈투이지 상처가 너무 아플 땐 어두운 골방에 숨어 피고름 흐를 때까지 눈물만 흘렸어 세상과 나 사이에 벽 하나 더 만들고 딱지가 앉아서야 골방을 나섰었네 벽이 늘어갈수록 상처는 아물지 않아 짓무른 악취에 기절하고서야 숨어 울면 세..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6.23
난 아닐 줄 알았는데 난 아닐 줄 알았는데 임 현 숙 백발의 시어머니 바늘귀를 내밀면 퉁명스럽게 실을 꿰어드렸네 난 안 그럴 줄 알았는지 얼굴에 검은 꽃 얼룩지고 툭하면 삐지고 묵은지 같은 이야기 골백번 풀어놓았네 난 아닐 줄 알았는데 난 정말 안 그럴 줄 알았나 보네 상속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유산..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6.12
산다는 건 산다는 건 임 현 숙 산다는 건 주어진 멍에를 메고 먼 길을 가는 것 저어기 어떤 이는 멋진 차를 타고 어떤 이는 편안한 신발 신고 꽃길 달려가는 여행길이지만 여기 어떤 이는 맨발로 부르트고 피 흘리며 고행의 가시밭길 헤쳐가는 것 걷다가 걷다가 큰비를 만나면 젖은 솜 지고 가는 당..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6.09
새벽 비 새벽 비 임 현 숙 새벽 비는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서글피 내려와 그리움을 깨웁니다 찬비 맞은 풀잎이 서로 부둥켜 안고 온기를 나누듯 그리운 사람과 해후하라고 하늘길 말갛게 씻어 그리움이 고개 든 저 너머로 무지개 다리 놓는 새벽 비는 휘몰이장단으로 다가오는 그대입니다. -림(20..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5.23
당신에게는 당신에게는 임 현 숙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에게는 날마다 그림자조차 빛나는 구김살 없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구름은 저 너머로 달아나고 깃털 구름 새처럼 나는 푸른 하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곤할 날엔 좋은 일이 파랑새처럼 날아와 덩실덩실 춤추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5.15
오래되면 오래되면 임 현 숙 겉보기엔 싱싱한데 늙어 비릿하다고 외면당한 오이 한 토막 묵어가는 사람도 늙은 오이 맛이 나곤 하지 어디 맛뿐이겠어 퇴근길 버스 안에 풀썩거리던 노린내 어지러워 한 정거장 먼저 내렸지 그제는 흰 머리를 물들이며 마음은 청춘이라 되뇌었건만 새살거리는 오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5.05
백수 놀이 백수 놀이 임 현 숙 내 몸의 지체들이 쉬자- 놀자- 반기를 들어 사령탑인 머리가 지끈지끈 그래, 오늘은 백수 놀이다 음악과 뒹굴고 컴퓨터랑 놀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도 해가 중천 커피, 크루아상, 멜론까지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노래 삼매경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30
편지 편지 임 현 숙 창문을 넘어온 햇살이 간지러운 아침 빗살 무늬 사이로 파란 하늘 강이 흐르고 어느새 바람 우체부가 다녀갔는지 문 앞에 수북이 쌓인 꽃잎 편지들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마음이 알아보는 사연의 빛깔 오늘 밤엔 별님 편에 살짝 소식 전해야겠다. -림(20130510)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27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임 현 숙 노랗게 송홧가루 날리며 수려한 사월이 진다고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분홍 꽃눈 나리는 나무 아래서 내 안에 있는 이름 나직이 불러보며 보고 싶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슬비가 눈처럼 내려 살 떨리도록 추워도 외롭다고 눈물 흘리지 않겠습니다 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26
비빔밥 같은 세상 비빔밥 같은 세상 임 현 숙 큼직한 사발에 고슬고슬한 밥을 담아 갖은 고명을 얹었네 흙을 닮은 고사리 아저씨 띵띵한 궁둥이 호박 아줌마 발그레한 당근 소녀 시원시원한 콩나물 소년 약방에 감초 같은 양파 아가씨 힘이 넘치는 고기볶음 총각 노란 병아리 달걀 어린이 왕년엔 호령깨나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22
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 임 현 숙 나뭇가지에 앉은 달님이 눈에 들어와 밤이 하얗습니다 멀리 있어 볼 수 없어도 달빛으로 말을 거시는 당신 술렁이는 소리에 수줍어 수줍어 이불 깃에 숨어 귀만 쫑긋합니다 달빛 무전을 보내셨군요 귀 뚜 르 르... 보 고 싶 다... . -림(20110909)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17
봄비 봄비 임 현 숙 하늘에는 회색 비 뜨락에는 초록 비 내 가슴엔 분홍 비 알록알록 물들이는 봄비의 마술 작은 창에 내걸린 싱그러운 수채화 -림(20130313)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15
봄은 봄은 임 현 숙 이 동네 저 동네 꽃 잔치 굽은 풀잎 허리 펴고 개울물은 좋아라 웅얼웅얼 먹구름은 하얀 명주 날개 살랑 봄 , 봄, 봄 신나는 봄이란다 딸, 아들, 강아지까지도 싱숭생숭 가정에 봄바람 불어 저녁 식탁 등이 늦게 켜지고 설거지하던 고무장갑 창밖 꽃가지 따라 출렁 흔들리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13
후후 후후 임 현 숙 안마당에 봄이 내려왔어요 그냥 지나칠 줄 알았더니 산수유에 노랑나비처럼 앉았네요 봄은 천의 얼굴이에요 어제는 창백했는데 오늘은 노랗게 내일은 어떤 색일까 내 마음도 자꾸 푸르러지고 화사해져요 이러다 당신이 못 알아보면 어쩌지요 후후 -림(20140426)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08
사월 사월 임 현 숙 사월은 거리마다 꽃들의 웃음소리 오일장 봄나물처럼 온통 파릇한 설렘 늙은 나무도 푸른 귀 쫑긋거리네 물빛 하늘엔 하얀 구름 수련처럼 피고 내 마음 황무지엔 꽃불 번지네 아, 사월에는 귀 닫고 눈 감고 마음의 고요를 빌고 싶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03
삶이여, 그대 삶이여, 그대 임 현 숙 삶이여, 그대로 인해 불효자 되고 누명도 쓰고 치욕에 이 악물며 봄날엔 꽃받침 여름엔 밍근한 수돗물 가을엔 발길에 채는 낙엽 겨울엔 부러진 삭정이 사철 그늘진 자리에 있어 벚꽃으로 피어날 기적을 꿈꾸며 저~어기 높은 하늘로 손 흔들어 보기도 합니다 삶이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4.02
봄을 만지다 봄을 만지다 임 현 숙 훈훈한 봄바람 나풀대는 거리로 꽃들이 나들이 나왔어요 왕관 쓴 튤립 콧대 높은 수선화 아웅다웅 으스대는 봄꽃들 곁에 나도 꽃인 양 피였어요 두 볼이 화끈화끈 달아오른 봄에 데였나 봐요.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3.30
노래할 이유 있네 노래할 이유 있네 임 현 숙 봄이 더디다고 하늘 바라보며 눈물 찔끔 찍어낼 일 아니야 보도블록 틈새로 머리 내민 푸새 한 포기 봄빛 보려고 무진장 애 썼다는 것 알잖아 이끼 걸친 고목에 삐죽이 입술 내민 어린 순 단단한 껍질 헤집느라 얼마나 박치기했으면 푸른 멍이 들었겠어 어두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3.27
봄비에 젖으면 봄비에 젖으면 임 현 숙 자박자박 봄비 내리는 길 지난겨울 그림자 해맑게 지우는 빗방울 소리 흥겨워 발걸음도 춤을 추네 반 토막 난 지렁이 재생의 욕망이 몸부림치고 시냇가 버드나무 올올이 연둣빛 리본 달고 나 살아났노라 환호성 하네 늙수그레하던 세상 생명수에 젖어 젖어 기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3.26
허물 허물 임 현 숙 의자 위에 침대 위에 널부러진 탈피의 흔적들 탓하기 입 아파서 문 닫아 외면하는 내 분신인 카멜레온의 허물. -림(20120621)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