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163

그리움만 쌓입니다

그리움만 쌓입니다 임 현 숙 눈이 내립니다 한 장의 풍경 엽서 위에 삐뚤빼뚤 지나온 발자국 하얗게 지우며 닳아빠진 발바닥 잘 디디라 고개 숙이게 합니다 하얀 편지가 날립니다 온 세상 지극히 사연으로 덮여도 내게 온 편지 한 장 찾다가 찾다가 밤이 오면 싸락싸락 그리움만 가슴에 쌓입니다. -림(20131209

그땐 몰랐어요

그땐 몰랐어요 임 현 숙 늦은 나이에 낳은 막내딸 키만 커다란 전봇대에 시집 보내 놓고 날마다 전화기 앞에 앉아 기다리셨지요 곰살궂지도 않은 딸이 뭐 그리 예쁘다고 친정 나들이 가던 날은 힘없는 다리 이끌고 부엌을 지키며 따뜻한 밥상 차려 내셨어요 신랑이랑 아가랑 시어머니랑 알콩달콩 행복 짓느라 친정엄마는 마음 밖에 있다가 울음이 터지는 날에 그리워하곤 했지요 골목 어귀에 서성거리며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다리던 그 마음을 그땐 몰랐어요 그리워하며 보고 싶은 마음 사랑, 사랑은 늘 기다림인 것을. -림(20131123)

소식

소식 임 현 숙 먼 길 떠나지 않아도 집을 나서면 손짓하는 고운 빛에 잠자던 붉은 피 쿵쿵 뛰어노는데 다홍 감이 여물어갈수록 감잎 지는 소리 뚝뚝 가을은 저물어 가고 바알갛게 까치밥 지어놓고 반가운 까치 소리 기다리며 들릴 듯 말듯 행여 오늘일까 그리운 고향 하늘 바라봅니다 심술스런 가을비에 눈물짓는 마지막 이파리가 기다리는 내 마음같습니다. -림(2013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