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5/02 6

어떤 회한

어떤 회한 임현숙  도망간 잠을 쫓아가다 지치면젊은 날 휘두른 칼날의 회한이 삼류 무대의 막을 올린다 '베르디의 나부코'가 흘러나오는 찻집한 여자가 속눈썹이 긴 남자를 돌아서고 있다그녀의 부족함이 그의 가난을 받아줄 수 없는 건 아니라는데해사한 미소에 얹힌 코털 때문이었을까커피가 식기도 전에 일어서는 모질은 여자다음날 갱지에 써 보낸 몇 줄의 무덤덤한 문장으로순정을 베고 만다 그을음을 남기고 꺼져버린 촛불지워도 지워내도 스미인 칼 빛 오래도록 행복을 빌었던당돌한 청춘의 흔적 머리에 억새꽃 한창인 이제그만 잊어도 되지 않겠니 물안개 속에서 먼동이 불새처럼 날아오른다정갈한 햇살에 머리를 감아야겠다. -림(20250115) https://www.youtube.com/watch?v=92hmjW1-NJI

설날 밥상

설날 밥상 임현숙   코리아의 명절 설날밴쿠버 우리 밥상에 만국기 휘날리며젓가락이 세계 여행을 한다 차이나에 도착해 차오몐 한 입오사카로 날아가 튀김 한 점 이탈리아에선 손녀만 피자 한 조각내 고향 코리아의갈비찜과 산적그리고 떡국 한 입두루두루 다니다 가도내 젓가락 단골은 김치 맛집 우리 집 밥상은설날에도 냠냠 세계 일주 떡국 한 사발에나이 한 살 더 먹던어머니 밥상 그립다.  -림(20250128) https://www.youtube.com/watch?v=tserjeGZaVY&t=5s

첫눈

첫눈  임현숙  첫눈 내린 이른 아침소복소복 숫눈에  내 것이라고 발 도장 꾸욱 찍습니다 눈보라 펄펄내게로 와무조건 내 편이라며함박꽃 한 아름 안겨줍니다 저 아랫마을 길 하늘로 이어놓고내 비틀린 발자국 싹싹 지우고마음밭 메말라 피지 않던 시꽃구름 빛 하늘에 몽글몽글 피어나며내 여린 눈동자에외로운 가슴팍에하얗게 흐드러집니다 첫사랑 같이 다가와  봄 햇살처럼 피어나는 눈꽃허물 덮는 내 편 있어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오늘입니다.  -림(20250202)   https://www.youtube.com/watch?v=Y7nI6h2z0Ns

내 신실한 종

내 신실한 종 임현숙    발톱을 깎다가 가뭄 든 밭을 보았다손바닥보다 더 주름진 발바닥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어둡고 시리고 끈적한 날들을 무병하게 지나오며발효된 서사(敍事)가 밭고랑에 꿈틀거린다딱딱한 바닥과 말랑말랑한 뒤꿈치의아슬아슬한 첫 입맞춤부터달과 해의 무게를 버텨내며 다져진 군살이이따금 티눈으로 샐쭉할 때면 발이 투덜거리곤 했다잘 나가는 신작로만 맞댄 건 아니었으나시궁창에 얼굴 비비지 않은 걸 고마워할까담배 연기 같은 허무를 탐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길까구수한 맛 미끄럼 치는 주방 바닥흙냄새 정다운 오솔길과의 만남이소소한 행복이었음을 기억할까지금도 까슬한 바닥 위에 맨살로 납작 엎드려명령을 기다리는 내 신실한 종내일은 태양과의 맞선을 주선해야겠다.   -림(20250113) https://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