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길목에서 겨울 길목에서 임 현 숙 별빛을 사랑해 외롭고 달빛이 그리워 서글픈 시절은 갔다 지붕 위에 서리꽃 눈부신 아침 밤새 꽁꽁 언 감들이 따스한 볕 사랑에 눈물짓는다 응달엔 무서리 울상이니 햇볕이 얼마나 미더운가 겨울 길목에서 우리도 마음의 난로에 불을 지피자 해처럼 너그러이 사..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2.15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 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 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 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 철든 눈동자엔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2.05
바람이 산다 바람이 산다 임 현 숙 내 오른 무르팍에 세 든 지 두어 해 된 바람이 살다 얼마 전 손목으로 이사했다 여름엔 기척 없이 지내더니 요즘 가시가 돋아 콕콕 찔러대는 통에 밤잠을 설친다 파스로 무장해봐도 기세등등 날 선 바람에 집은 낡아져 가 이방 저방 숭숭하다 집주인 행세하기 전에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1.28
마지막 이파리 지다 마지막 이파리 지다 임 현 숙 창밖 미루나무 마지막 이파리 뚝 지던 날 비가 내렸다 나무는 이별이 서러워 주룩주룩 울었다 다 비우고 남은 한 잎만은 화석으로 함께 늙어가기를 언약했건만 붉디붉게 익고 나면 이글거리던 불꽃 사그라지듯 지고 만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떨어진 자리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0.20
가을 여자 가을 여자 임 현 숙 비 그친 가을 숲에 단풍 불붙이는 안개 자욱이 피어오르고 젖은 단풍 어제보다 더 새빨간 입술로 거리에 서면 날리는 불티 서편 하늘에 불을 놓아 아, 슬픈 노을 애잔한 가슴은 바람 앞 촛불이어라. -림(20141015)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0.15
시월은 시월은 임 현 숙 더는 버릴 게 없는데 더는 잃을 게 없는데 가을이 와서 자꾸 잊으라 하네 하지만 아직은 황홀한 시월 감청색 하늘에 흰 구름 꽃 저마다 물드는 잎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바라보는 눈길이 애틋하구나 유행 지난 옷처럼 초라한 이 마음의 나래 다시 한 번 붉게 붉게 물들..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0.11
참 쓸쓸한 아침 참 쓸쓸한 아침 임 현 숙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셔야 하는 아침은 사랑니 나던 아픔이 되살아난다 서둘러 나서야 하는 인생길이 내리는 눈 한 송이도 피할 수 없는 허허벌판이기에 커피의 여운을 누리는 호강이 멀기만 하다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는 건 짝사랑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처럼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0.06
자화상 자화상 임 현 숙 바람만 스쳐도 소스라치는 여자 슬픈 드라마에 눈물샘 철철 넘치는 여자 모닝커피를 행복으로 음미하는 여자 미인은 아닌데 조용히 있어도 눈에 띈다는 여자 그러나 심장을 열어보면 크고 작은 못투성이 여자 숨 쉴 때마다 신음하는 여자 살고 싶어 글을 쓰는 여자. -림(2..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10.06
가을 서정(抒情) 가을 서정(抒情) 임 현 숙 가을을 만나면 누구는 외롭고 누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누구는 서글프다 하는데 흔들리고 싶은 나는 바람의 집 길목 코스모스가 되고 싶어라. -림(20140920)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9.20
사랑 사랑 임 현 숙 사랑은 시소 놀이 어느 날엔 하늘을 오르고 어느 날엔 수평이 되기도 하지만 사랑하면 할수록 낮아지는 것 -림(20140917)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9.17
나는 노래하려네 나는 노래하려네 임 현 숙 중년의 가을은 정오를 넘은 시각 해넘이 곶으로 해넘이 곶으로 추억을 등지고 저물라 하네 푸르게 싹 터 자라던 꿈과 바알갛게 영글어 수줍던 사랑 시방도 잎맥에 도도록한데 훨훨 지는 이파리 되라 하네 가을마저 깊어 기나긴 침묵에 잠들 때까지 나는 노래하..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8.30
조금만… 조금만… 임 현 숙 고등어조림이 끓고 있다 그가 다 되었냐고 묻는다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은 고등어 비린내가 무에 젖어드는 시간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따끈한 커피가 냉정해지는 시간 여름이 낙엽에 가을이라 전해주는 시간… 다중 성격이지만 금세 다가와 마침표를 찍는 약..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8.22
아름다운 글벗/문협 노래 아름다운 글벗/문협가 임 현 숙 1절 오랜만에 글 벗끼리 한 시름 내려놓고 형 아우 오손도손 격 없이 지내보면 화사한 꽃 피어나고 詩가 되는 사람아 매무새 다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모난 곳 어루만져 온화한 자리 되니 아픔이 다 사라지고 노고지리 우짖네 2절 가시 풀 헤쳐가며 글 밭..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8.14
하얀 구두 하얀 구두 임 현 숙 나는 하얀 여름 구두 여름이면 엄지발톱을 빨갛게 물들인 그녀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곤 했는데 폭폭 울던 그 날 이후 더는 그녀를 안을 수 없었고 슬픈 발에는 키 작은 운동화가 눈물을 닦아주며 따라다녔다 오늘은 웬일인지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살포시 안겨 와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7.25
詩 詩 임 현 숙 초승달 옆에 점 하나 그려넣고 눈[目]이라 우기면 詩가 될까 널 생각하면 온통 거미줄뿐인 무허가 건물 쓸고 닦아 채색해도 가분수 오늘도 해는 지고 다시 또 달과 별을 만지며 신음하는 몽당연필. -림(20140725)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7.25
언제쯤이면 언제쯤이면 임 현 숙 삼십 분을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문이 열리고 운전기사가 한 사람만 타라고 한다 정원이 차면 더는 태우지 않는 버스의 규정이 냉혹해도 순순히 물러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 혼자 버스에 오르며 줄서기 잘했지 싶다 줄을 선다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차..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7.18
세월 따라서 세월 따라서 임 현 숙 어려선 엄마가 사탕 열 개보다 좋아서 잠깐이라도 눈에서 벗어나면 구구거리며 찾아다녔는데 혼자 문밖출입을 할 만큼 자라선 친구를 알게 되고 차츰 엄마의 순위는 밀려났다 그러다 이성이 마음에 들어온 후 엄마는 콩알처럼 더 작아져 버려 다락방에 밀쳐둔 장난..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7.04
후회 후회 임 현 숙 산다는 건 강물 같아서 영원히 머무르고 싶어도 끌리듯 흘러가는 것 어제는 협곡을 지났고 오늘은 숲을 지나치지만 내일은 어쩌면 무지개 뜨는 들판을 달릴지도 모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원하는 곳으로 물길을 돌려보았지만 폭포에서 물보라로 부서지고 남은 건 본능뿐 ..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6.23
해마다 오월이면 해마다 오월이면 임 현 숙 해마다 오월은 푸르게 오고 가고 그리움은 밀림이 되어가고 푸른 잎만 보아도 나는 아프다 -림(20140514)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5.14
후후 후후 임 현 숙 안마당에 봄이 내려왔어요 그냥 지나칠 줄 알았더니 산수유에 노랑나비처럼 앉았네요 봄은 천의 얼굴이에요 어제는 창백했는데 오늘은 노랗게 내일은 어떤 색일까 내 마음도 자꾸 푸르러지고 화사해져요 이러다 당신이 못 알아보면 어쩌지요 후후 -림(20140426)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