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등잔/도종환

라포엠(bluenamok) 2025. 1. 28. 23:23

 

 

 

 

등잔 /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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