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 1624

2021.09.03/밴중앙 기고-바람이 분다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life&wr_id=7278 [밴쿠버 문학] 바람이 분다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바람이 분다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 joinsmediacanada.com

2021.03.05/중앙일보 게재- 입춘이라네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life&wr_id=6964 [바다건너 글동네] 입춘이라네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저기 배나무 마지막 잎새는여태 지난여름 빛인데아이고나입춘이란다맹랑한 코비드 해일에도세월은 씩씩하게 제 할 일하네 나이 탓일까아 joinsmediacanada.com

2020.12.25./중앙일보 게재-순전한 마음

[바다건너 글동네] 순전한 마음 > LIFE | 밴쿠버 중앙일보 (joinsmediacanada.com) [바다건너 글동네] 순전한 마음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잠잠한 자선냄비를물끄러미 바라보는 꼬마눈웃음 어여삐꼭 쥔 고사리손을 냄비 안에 펼친다 뎅그렁뎅그렁탄일종을 울리는따뜻한 동전 두 잎 joinsmediacanada.com

노루를 찾습니다

노루를 찾습니다 나목 임현숙 긴 귀를 쫑긋거리며 큰길 앞에 서 있는 노루 가족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 어미가 앞장서 길을 건넌다 노루는 울부짖기보다 귀를 잘 기울인다 뉘엿뉘엿 해넘이 길에 귀 막은 동물들의 입씨름 고여있는 생각 때문일까 외로움 탓일까나 제발 귀를 좀 열어주세요~ 노루는 어디에 있을까 왠지 섧다. -림(20220326)

백조의 꿈

백조의 꿈 나목 임현숙 꽃 각시 시절 우아한 백조를 보았다 희끗희끗한 올림머리 치자꽃 내음 머금은 지금의 내 나이 또래 그녀 오래도록 거울 앞에서 그려보곤 했다 훗날 그녀처럼 되어야지 그 나이 오늘 거울 안엔 눈빛도 살빛도 닮지 않은 황조롱이 무거운 날개 닦고 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일선에 선 슬픈 눈빛 메기수염 입가 주름은 천일 또 또 천일의 이력 아 거울 안 백조의 꿈은 저만치 날아갔건만 거울 밖 황조롱이 가슴엔 노을빛 부서지는 다뉴브강이 물결친다. -림(20220323)

저어기 아롱거리는

저어기 아롱거리는 나목 임현숙 봄, 이 봄은 상냥하기도 하지 고목에도 새 이파리 돋아나네 꽃바람 미끄러지며 연두 꽃망울 너울대고 아지랑이처럼 추억이 피네 낡아 깁고 덧댄 기억들 나그네 긴 여정에 낙타의 두 혹 같은 것 새봄이 찾아와도 두근거리지 않을 화석으로 남아 풀잎 꽃 낙엽 눈··· 사철 피어나는 돌꽃이어라 그래 오랜 추억은 기억일 뿐 이 봄엔 푸른 향기를 그리워하자 기억 저어편 그것 말고 저어기 아롱거리는 신기루 같은. -림(20220310)

겨울을 보내며

겨울을 보내며 나목 임현숙 바다를 건너온 봄이 겨울잠이 목마른 내 빈한 뜨락에 바다 빛 수다를 풀어놓는다 지난겨울은 순결한 눈빛으로 기도를 가르쳤다 빈 들에서 주린 이를 위하여 눈밭에서 헐벗은 이를 위하여 겨울비처럼 눈물짓는 이를 위하여 다시 드러날 나의 허물을 위하여 지난겨울은 마음 수련원이었다 무언의 회초리로 내 안에 파도치는 노여움과 모난 등성이를 꾸짖어 참 어른다운 자리로 이끌었다 봄이면 철부지로 되돌아갈 일 겨울마다 받은 수십 개의 수료증이 마음 벽을 도배한다 이제 돌아갈 때라는 듯 봄의 헛기침이 뒷산의 잔설을 불어 내자 잰걸음으로 떠나는 겨울 미련 없이 꽃바람 품에 안기며 겨울의 언어로 배웅한다 다음에도 지엄한 회초리를 기다리겠다고. -림(20220222)

오래되면

오래되면 나목 임현숙 늙수그레한 용달차 팔팔해 보여도 매일 점검을 해야 해 더 오래된 차는 아직 젊어 좋겠다고 말하지 그래 서른 살 된 차가 보기엔 스무 살은 청년이지 스무 살의 절반은 짐이 깨끗하고 단출해서 날아다녔지 단 한 번의 추돌 사고 후 내 등에 실린 건 쇠붙이였다네 발이 땅에 붙게 버거워 헉헉거리다가도 이 짐이 누군가의 밥이 되고 날개가 된다는 것이 새 원동력이 되었어 언덕을 오를 때면 거북이가 되지만 조금 느리면 어때 심장이 멈출 때까지 달려갈 테야 낡고 긴 터널을 지나며 빛을 향해 뛰어가고 싶은 그 여자 아침마다 오래된 혈관에 윤활유를 붓는다. -림(20220215) 한국문협 부산지부/월간 문학도시2022년 8월호/기획특집/해외 한국문학 수록

겨울비에게

겨울비에게 나목 임 현 숙 겨울비는 줄곧 내리고 창가 의자와 한 몸 되어 무생물이 되어간다 흐린 눈빛이 거리를 내다보면 힘차게 달리는 자동차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장대비 내려 빈 눈빛에 강물이 찰랑대게 해 주렴 번개야 휴화산 심장에 도화선이 돼주렴 천둥아 깊이 잠든 이성을 벌떡 깨워주렴 눈 감으면 떠오르던 먼 그리움 말라버린 눈물조차도 새살처럼 돋아나기를 겨울비여 나는 살아 있고 싶다. -림(20220204)

회상

회상 나목 임 현 숙 눈 오는 밤 거침없이 내리는 저 눈발은 오랜 기억의 편린들 밤이 깊을수록 눈발은 이 가슴 후비고 머언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모스부호 나는 잊었다 했는데 가슴에 묻었다 했는데 슬그머니 나부끼는 청춘의 분홍 깃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분홍 대신 나만의 파랑길을 걸으리. -림(20211220)

아픔보다 더한 아픔

아픔보다 더한 아픔 나목 임 현 숙 목에 쇠침이 박혔다 설마 했던 그놈이 내게도 들어왔다 대문에 빗장 건 이레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마른 갈대 입술을 열면 작렬하는 쇳소리 한솥밥 식구들은 겉보기엔 나이롱환자 망할 균이 흥해서 우쭐대는 중이지만 1차 2차 3차 저항군이 절대 백기는 들지 않을 것 분연히 항거하는 더운 숨소리 아프다 너와 내가 곁눈으로 눈치 보며 저 건너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 -림(20220116)

연말정산

연말정산 나목 임 현 숙 먼 옛날엔 연말이 다가오면 대중목욕탕에서 때 정산을 하곤 했다 그 시절 어머니 손길 그리워 먼 하늘 바라보다 오늘 때밀이 대신 마사지를 받는다 수줍은 첫 경험 미지의 문을 열고 들어서서 나보다 작은 여자의 안내를 받고 탈의 후 엎드려 누워 심호흡하면 깊숙이 밀려오는 라벤더 향기 어제의 모자란 잠이 파도친다 그녀의 작은 손가락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듯 굴러갈 때마다 뻐근하다고 엄살 부리던 근육이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세포들에 주는 선물 석화된 마음마저도 마시멜로가 되어 미운 사람을 안아주고 싶어진다 사랑할까 두려운 연말정산이다. -림(20211221)

김치와 손녀

김치와 손녀 나목 임 현 숙 만 네 살인 손녀 가르치지 않아도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솜씨가 놀랍다 나랑 한국말로 조잘거리다가 순간 지 아빠와 영어로 재잘거린다 자동 반사하는 그 이쁜 입술이 가끔 날 삐지게도 한다 '할머니 손에서 냄새 나' '어휴 김치 냄새' 손을 깨끗이 씻어도 때로 음식 냄새가 배어있기 마련 냄새 묻은 손으로 주는 음식은 밀어낸다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김치 인이 박인 마약을 손녀와 더 알콩달콩 지내려면 멀리해야 할까. -림(20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