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이유 잠 못 드는 이유 임 현 숙 함박눈 은혜로이 자장가 부르는 밤 미끄러지는 차의 굉음만 고요를 흔들고 밤은 새벽으로 가는 중 지친 눈은 자자 자자고 애원하는데 쌀쌀한 잠은 그리움 사무치던 옛 밤처럼 저만치 물러서 있구나 나란히 늙어가는 창밖 단풍나무도 마지막 잎새 떨군 지 오래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20.01.22
섣달그믐 밤에 섣달그믐 밤에 임 현 숙 섣달그믐 돌아온 탕아처럼 예배실로 들어갔다 복음송도 새롭고 찬송가 가락도 변하고 따라 부르는 음성엔 뜨거움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에 너무 멀어진 생명 시냇가 얼어붙은 심장이 가벼운 입술로 송구영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눈이 하얗게 길을 덮고 있..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2.30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시간의 나래에서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이마를 낮춰손끝에 가시가 돋고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대못이 박히고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철든 눈동자엔겁 없는 미소가 찰랑댑니다겨울나무처럼 허울을 벗고 나니어느 별에 홀로 떨어져도삽을 들겠노라고앙상한 발가락이 박차를 가합니다그토록 기다리던새봄이 오지 않는다 해도해쓱한 볼이 터지라웃으며 달리렵니다. -림(20141205)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2.13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임 현 숙 가을이 그리는 수채화를 보노라면 고즈넉한 풍경 한 점이 애틋합니다 가을이 무르익은 어스름 녘 가로등 그윽이 눈을 뜨고 소슬한 바람 한 자락 갈잎 지는 곳 나처럼 외로운 벤치 하나 쓸쓸함이 황홀한 그 자리에 앉으면 풍경 저편에 사는 추억이 천리..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30
깃털 같은 가벼움 깃털 같은 가벼움 임 현 숙 가을 나무가 바람이 탐하고 지나간 욕망의 옷을 벗는다 듬성듬성 빈자리로 파란 하늘이 상큼하고 커피점 창가에 연인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비움의 미학이다 아름다운 정점에서 버릴 줄도 아는 나무처럼 화려한 연회 복을 벗고 산다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10
자장자장 울 할미 자장자장 울 할미 임 현 숙 이순의 할머니 돌배기 손녀 낮잠을 재우려고 자장가를 부르네 할머니 무릎 베고 흥얼거리는 아기 할미는 사르르 꿈길로 접어드는데 열 번을 반복해도 아가 눈은 샛별 손녀가 할머니를 먼저 재우네. -림(20180910)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11.06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 임 현 숙 11월의 나무는 공연을 마친 연극배우처럼 관객이 썰물 진 무대 붉은 조명등을 하나둘 끈다 붉은 기염을 토할 때마다 고막을 찢던 탄성 더욱 열연하던 이파리들도 박수받으며 퇴장한 후 못다 한 욕망의 갈색 등 바람의 밭은기침에 아슬아슬한 초침의 그네를 탄다 연륜..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06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임 현 숙 가을엔 무엇이 되어도 좋으리 들녘을 나는 한 줄기 바람 논두렁 밭두렁 가 널브러진 들꽃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그 무엇이라도 감사하리 노랗게 빠알갛게 익어 가는 풍경 속에 저무는 노을이어도 행복하리 호흡 있음이 경이롭고 꽃이라 부르는 그대 있..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0.13
가을 나무 가을 나무 임 현 숙 머얼리 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 빈손으로 선 나는 가을 나무입니다 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 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 데구루루 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 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 하나, 둘 이 세상 소유문서에서 내 이름이 지워집니다 노을빛이 익어갈수록 나는 ..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0.11
중앙일보 9/13 게재-사랑의 톱니바퀴 사랑의 톱니바퀴 임 현 숙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얘야, 사랑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내 절반을 비워내고 그이를 끌어안는 거야 나를 내세우기보다 그에게 맞춰가는 거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서로 맞물려 째깍째깍 굴러가듯 오목 볼록을 포용..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9.09.13
밴조선 9/7일 자 게재-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임 현 숙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침 안개 걷힌 후 해가 빛나듯 눅눅한 마음밭이 보송보송해지는 것 우울한 일상에 풀 죽어 있다가도 생각나면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끝없는 관심과 배려로 다가가는 것 보고 싶어 그 창가를 기웃거리고 그리워 먼 하늘 바라보다 구름이 되는 것 행여 소식 올까 편지함을 열어보고 반가운 이름에 즐거운 종달새가 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 오는 날 한 우산 속에 있고 싶은 것 두 마음이 한마음 되기를 바라는 것.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9.09.07
제5호 바다건너 글동네 수록/이순에 들다, 12월을 달리며 이순耳順에 들다 임 현 숙 어엿이 내 나이 이순 트로트보다 발라드가 좋고 연인들을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거울 속 모습은 할머니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 이순에 들어서니 무심히 버리고 온 것들이 어른거린다 하루가 멀다 붙어 다니던 친구 장흥 골 어느 카페 부부동반 교회 모임 형..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9.09.07
내 유년의 골목길 내 유년의 골목길 임 현 숙 내 유년의 골목길은 놀이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까르르 깔깔 옷은 초라해도 마음은 아라비아 부자였지 어린 발자국 사라지면 누룽지 냄새 가장을 반기고 뿌연 외등 깜박이며 연인들 입맞춤 눈 감아 주기도 했지 밤 깊어 출출할 무렵 부르잖아도 찾아오는 야식 배달 메~밀~~묵 찹~쌀~~떡~~~ 좁은 골목길은 누추하지만 유쾌하고 정겹고 낭만이 있었네 세월이 무심히 흘러 찾아간 그 골목엔 유년의 웃음소리 대신 반짝이는 자동차가 거드름 부리고 앉아 있었어 현대화가 야속하게 밀어버린 옛 시절 그리워 눈감으니 포장도로 저 밑에서 철모르던 명랑한 소리 달려오네. -림(20190826)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27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임 현 숙 바람이 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 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리가 굵어가지만 내 서러운 손바닥은 서툰 삽질에 옹이가 깊어진다 툭 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던 오랜 두통을 치료..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21
꽃이었어라 꽃이었어라 임 현 숙 지인이 보내온 꽃 사진 장미 칸나 수국 양귀비 이름 모를 꽃들 저마다 고운 자태 눈부시네 사람도 꽃이어서 한 때는 향기로 바람을 부르고 스치는 실바람에도 송두리째 흔들렸지 꽃이 피고 지듯 사람도 저물어 저어기 심심 산촌에 이슬 머금었던 달맞이꽃 시든 잎새..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15
헛꿈 헛꿈 임 현 숙 치과 진료대에서 입술 너머 부끄러움이 낱낱이 드러난다 찢고 부수며 음미하던 욕망의 맷돌 상앗빛 청춘은 아스러지고 하얀 박꽃 미소도 침침해진 걸 엑스레이가 속속 파헤치고 있다 치아도 피부처럼 세월 따라 늙는다며 보수 공사를 요구한다 우두둑 씹으면 와르르할 예..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2019.07.06
큰 시누이 부부 큰 시누이 부부 임 현 숙 봄비 오는 거리엔 상큼한 봄동 겉절이 냄새가 배어있고 외양간 냄새 훅 바람결에 스친다. "정은 엄마 왔시유" 큰 시누이 남편은 나를 그렇게 반겼지. 늦둥이 신랑의 매형인 그는 시아버지뻘이었고 외국영화 배우를 닮은 잘 생긴 얼굴에 깊은 밭고랑이 패여 웃을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5
밴쿠버 연가 밴쿠버 연가 임 현 숙 태평양 물을 담아놓은 듯한 밴쿠버의 8월 하늘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낮의 볕은 톡 쏘지만 구름 그림자 내려앉은 자리엔 알래스카 바람이 너울대고 병풍처럼 둘러선 눈 덮인 산봉우리, 도시의 심장을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유유히 흐르는 프레이저 강,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