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 1624

용서라는 말의 온도

용서라는 말의 온도 임 현 숙 당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불꽃으로 돌진하는 불나방이었습니다 오롯이 한 빛만 향해 파닥였지만 회전 벨트처럼 늘 제자리였던 길 때론 외로웠고 때론 슬픔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 상처 입던 길 사랑은 무지개색이라 말하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이글거리던 불꽃에 날개는 얼어버리고 비로소 그 길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더는 그립지 않아도 되는 일 더는 아프지 않아도 되는 일 이제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일 한 때 사랑이라 이름하던 그 길에 '용서해'라는 팻말을 박아 놓고 돌아오는 사람 그 말의 소름에 뜨거웠던 기억의 고리마저 고드름꽃이 피어납니다. -림(20230202)

강변에서

강변에서 임현숙 어제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운 이름이 낙엽과 뒹굴며 추억의 파노라마를 그렸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하얀 눈발 억새풀 머리에 꽃잎처럼 쌓이고 마음은 바다 건너 서편에 머무는데 내 정처없는 발길은 강 건너 남쪽 그리움의 강변을 따라 걷습니다 바다는 시퍼런 파도로 철썩이지만 저 강물은 보드라운 물결로 허기진 마음뚝을 다독입니다 더는 바닷가에서 저녁놀을 기다리지 말라고 푸른 강 저기에 뜨는 노을이 그보다 뜨겁다고 속삭입니다. -림(20230201)

내 발등 내가 찍었다

내 발등 내가 찍었다 임현숙 작은 정원을 꾸미고 있었다 단풍나무 아래에 달빛 같은 물망초도 심고 울 엄마 닮은 나팔꽃도 심고 패랭이꽃, 금낭화 오밀조밀 심고 나니 크고 화려한 꽃을 심고 싶었다 작약 나무를 고르자 주변 사람들 모두 아니라 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병든 흔적이 보인다며 고개를 저었다 잘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며 덜컥 심었는데 꽃은커녕 숨어있던 병이 가지마다 출렁거린다 가지를 쳐내고 수혈을 해봐도 고질병인가 보다 '내 발등 내가 찍었다.' 때로는 조언을 귀담아들어야겠다. -림(20230125)

2022.11.05 밴조선 게재/그래요

그래요 임현숙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을목숨에 붙여 주셨어요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데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한 그루도 잘 돌보지 않으면푸른 이파리 벌레 먹고 갈변하듯이먹물 같던 머리 하얀 서리꽃 밭인 지금제멋대로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에요소화제 한 번 안 드시던 시어머니팔십 오수를 누리다 하늘로 가셨는데내 통장 잔고는 얼마나 될까요 여름을 지나며 옷 서랍을 정리하는데입지 않고 그냥 낡고 있는 옷들 위로올해 산 옷들이 거드름 피우고 있어요섬광처럼 꾸짖는 소리 들려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단다.' 그래요허리 꺾인 세..

2022.09.02 중앙일보 게재/또 한 번의 생일에

[밴쿠버 문학] 또 한 번의 생일에 > LIFE | 밴쿠버 중앙일보 (joinsmediacanada.com) [밴쿠버 문학] 또 한 번의 생일에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가을 문 앞에서어머니는 낙엽을 낳으셨지바스러질까 고이시며젖이 없어 홍시를 먹이던 어미의 맘반백이 넘어서야 알았네소금 반찬에 성근 보리밥밀 joinsmediacanada.com

그래요

그래요 임현숙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을목숨에 붙여 주셨어요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데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한 그루도 잘 돌보지 않으면푸른 이파리 벌레 먹고 갈변하듯이먹물 같던 머리 하얀 서리꽃 밭인 지금제멋대로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에요소화제 한 번 안 드시던 시어머니팔십 오수를 누리다 하늘로 가셨는데내 통장 잔고는 얼마나 될까요 여름을 지나며 옷 서랍을 정리하는데입지 않고 그냥 낡고 있는 옷들 위로올해 산 옷들이 거드름 피우고 있어요섬광처럼 꾸짖는 소리 들려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단다.' 그래요허리 꺾인 세..

칼꽃의 바람

칼꽃의 바람 임 현 숙 전화기 너머에서 칼과 칼이 부딪치고 핏빛 칼꽃이 만발해요 동물의 말소리처럼 음성도 억양과 색깔이 다 다르죠 싫은 소리도 상냥하면 달콤하게 들리고 예사말도 거칠면 욱하게 해요 꽃잎에 베인 가슴에 핏방울이 맺히고 팡 터질 때마다 성품이 드러나지요 카나리아처럼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길길이 칼꽃을 피우니 귀를 봉해야 할까 입술을 잠가야 할까요. -림(20220817)

제7호 밴쿠버문학 수록/아픔보다 더한 아픔, 가을 기도, 봄비 오시네, 이제, 돌아가려네

제7호 밴쿠버문학 수록/아픔보다 더한 아픔, 가을 기도, 봄비 오시네, 이제, 돌아가려네 아픔보다 더한 아픔 목에 쇠침이 박혔다 설마 했던 그놈이 내게도 들어왔다 대문에 빗장 건 이레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마른 갈대 입술을 열면 작렬하는 쇳소리 한솥밥 식구들은 겉보기엔 나이롱환자 망할 균이 흥해서 우쭐대는 중이지만 1차 2차 3차 저항군이 절대 백기는 들지 않을 것 분연히 항거하는 더운 숨소리 아프다 너와 내가 곁눈으로 눈치 보며 저 건너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 -림(20220116) 가을 기도 수수하던 이파리 저마다 진한 화장을 하는 이 계절에 나도 한 잎 단풍이 되고 싶다 앙가슴 묵은 체증 삐뚤거리던 발자국 세 치 혀의 오만한 수다 질기고 구린 것들을 붉게 타는 단풍 숲에 태우고 싶다 그리하여 ..

밴쿠버문학 제 6호 수록 글/바람이 분다, 서리

밴쿠버문학 제 6호 수록 글/바람이 분다, 서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 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리가 굵어가지만 내 서러운 손바닥은 서툰 삽질에 옹이가 깊어진다 툭 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던 오랜 두통을 치료해 준 은인의 땅 무수리로 살아도 알약에서 놓여나니 천국의 나날인데 이맛살이 깊어지니 미련 없이 떠나온 고향이 옹이를 속속 담금질한다 바람이 분다 실핏줄에 들엉긴 저린 것들이 고향으로 가자고 역풍이 분다. -림(20190820) 2021.09.03. 밴중앙일보 게재 서리 밤새 앓던 아버지의 잿빛 신음이 아침 마당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눈물지었습니다 느지막이 얻은 막내딸 결혼식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

민들레

민들레 임 현 숙 하늘 아래 낮게 피어 고개 떨구지 않는 풀꽃 강아지가 오줌을 깔기고 가도 노랗게 웃는 얼굴 잔디밭의 천덕꾸러기지만 꽃잎 이파리 뿌리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약초 바람 따라 날아가 부활하는 민들레꽃 누군가는 오늘도 모가지를 비틀고 그 누군가는 송두리째 파내겠지만 나는 어제 민들레 홀씨 하나 마음밭에 심었다. -림(20220423)

2022년 1월까지 밴조선 게재 시 열람

https://www.vanchosun.com/news/main/frame.php?main=1&boardId=22&bdId=49377&cpage1=4&search_keywordtype=writer&search_title=%EC%9E%84%ED%98%84%EC%88%99 [밴쿠버 조선일보][밴쿠버한인문협/시] 느낌이 깊은 사람이 좋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싶어 냉장고를 뒤진다껍질에 줄만 그으면 수박이 될 지도 모를 단호박이 당첨되었다진초록 속에 감춘 오렌지빛 노랑 속살은 밤처럼 고소하고 홍시처럼 달콤하다울퉁불퉁 www.vanchosun.com https://www.vanchosun.com/news/main/frame.php?main=1&boardId=22&bdId=50052&cpage1=4&search_ke..

2022.02.18./중앙일보 게재/아픔보다 더한 아픔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life&wr_id=7399&page=2 [밴쿠버 문학] 아픔보다 더한 아픔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목에 쇠침이 박혔다설마 했던그놈이 내게도 들어왔다 대문에 빗장 건이레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마른 갈대 입술을 열면 작렬하는 쇳소리한솥밥 식구들 joinsmediacanada.com

2022년 2월 까지 중앙일보 게재 시 열람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life&wr_id=3365 [바다건너 글동네] 그곳에 가면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 (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느른하고 헐렁한 오늘갓 잡은 고등어처럼 펄펄 뛰는 남대문 시장에 가고 싶다 골라 골라 손뼉을 치며 온종일 골라보라는 사람 오만 잡동사니를 - joinsmediacanada.com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life&wr_id=3590# [바다건너 글동네] 구월이 오면 - 밴쿠버 중앙일보 임현숙(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파란 하늘 모자 쓰고 황금 햇살 미끄럼 타며 구월 문 - 밴쿠버 중앙일보 joinsmediacanad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