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나무에게 추억의 나무에게 임 현 숙 바람 부는 그곳 기찻길처럼 딱 그만큼 거리에서 절로 꽃 피고 낙엽 지던 나무여 봄 숨결 파릇한 날이면 마음이랑 그윽이 젖어 드는 건 움터 보지도 못한 탓일까나 기억 저편 뿌리 깊은 나무야 장대비처럼 달려가 꽃 한 송이 되고 싶었던 눈시울 붉은 추억이여 흐드러진 들꽃 아닌 이름 모를 풀이어도 아련히 부푸는 설렘 있어 나는야 이 처연한 봄이 좋아야. -림(20200229)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20.03.10
잠 못 드는 이유 잠 못 드는 이유 임 현 숙 함박눈 은혜로이 자장가 부르는 밤 미끄러지는 차의 굉음만 고요를 흔들고 밤은 새벽으로 가는 중 지친 눈은 자자 자자고 애원하는데 쌀쌀한 잠은 그리움 사무치던 옛 밤처럼 저만치 물러서 있구나 나란히 늙어가는 창밖 단풍나무도 마지막 잎새 떨군 지 오래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20.01.22
자장자장 울 할미 자장자장 울 할미 임 현 숙 이순의 할머니 돌배기 손녀 낮잠을 재우려고 자장가를 부르네 할머니 무릎 베고 흥얼거리는 아기 할미는 사르르 꿈길로 접어드는데 열 번을 반복해도 아가 눈은 샛별 손녀가 할머니를 먼저 재우네. -림(20180910)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11.06
내 유년의 골목길 내 유년의 골목길 임 현 숙 내 유년의 골목길은 놀이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까르르 깔깔 옷은 초라해도 마음은 아라비아 부자였지 어린 발자국 사라지면 누룽지 냄새 가장을 반기고 뿌연 외등 깜박이며 연인들 입맞춤 눈 감아 주기도 했지 밤 깊어 출출할 무렵 부르잖아도 찾아오는 야식 배달 메~밀~~묵 찹~쌀~~떡~~~ 좁은 골목길은 누추하지만 유쾌하고 정겹고 낭만이 있었네 세월이 무심히 흘러 찾아간 그 골목엔 유년의 웃음소리 대신 반짝이는 자동차가 거드름 부리고 앉아 있었어 현대화가 야속하게 밀어버린 옛 시절 그리워 눈감으니 포장도로 저 밑에서 철모르던 명랑한 소리 달려오네. -림(20190826)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27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임 현 숙 바람이 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 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리가 굵어가지만 내 서러운 손바닥은 서툰 삽질에 옹이가 깊어진다 툭 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던 오랜 두통을 치료..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21
꽃이었어라 꽃이었어라 임 현 숙 지인이 보내온 꽃 사진 장미 칸나 수국 양귀비 이름 모를 꽃들 저마다 고운 자태 눈부시네 사람도 꽃이어서 한 때는 향기로 바람을 부르고 스치는 실바람에도 송두리째 흔들렸지 꽃이 피고 지듯 사람도 저물어 저어기 심심 산촌에 이슬 머금었던 달맞이꽃 시든 잎새..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8.15
큰 시누이 부부 큰 시누이 부부 임 현 숙 봄비 오는 거리엔 상큼한 봄동 겉절이 냄새가 배어있고 외양간 냄새 훅 바람결에 스친다. "정은 엄마 왔시유" 큰 시누이 남편은 나를 그렇게 반겼지. 늦둥이 신랑의 매형인 그는 시아버지뻘이었고 외국영화 배우를 닮은 잘 생긴 얼굴에 깊은 밭고랑이 패여 웃을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5
밴쿠버 연가 밴쿠버 연가 임 현 숙 태평양 물을 담아놓은 듯한 밴쿠버의 8월 하늘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낮의 볕은 톡 쏘지만 구름 그림자 내려앉은 자리엔 알래스카 바람이 너울대고 병풍처럼 둘러선 눈 덮인 산봉우리, 도시의 심장을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유유히 흐르는 프레이저 강,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5
낮은 곳에 먼저 온 봄 낮은 곳에 먼저 온 봄 임 현 숙 마트에 다녀오다 풀 향기에 이끌려 공원으로 들어선다. 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잠을 깨우는지 제일 먼저 여린 풀잎이 눈을 뜨더니 점점 푸름이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작은 나무에 이파리가 싱그럽고 이름 모를 꽃들이 새살거린다. 저 키 큰 나무에 푸른 잎..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3
고수머리의 비애 고수머리의 비애 임 현 숙 내 머리는 반고수머리에다 숱은 어찌나 많은지 울창한 소나무 숲 같았다. 멋 내기를 알던 때부터 얼굴 화장보다 머리 매만지는데 공들여 거울 앞에 서면 투덜거렸었는데 세월의 사태로 반절은 뿌리 뽑혀 이제야 차분하니 보암직하다. 둘째 딸이 이런 날 꼭 빼닮..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3
추억은 비가 되어 추억은 비가 되어 임 현 숙 소나기가 내리는 주차장에서 빗방울의 이야기에 마음 기울입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울퉁불퉁한 내 맘을 다독여 주네요. 우렁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좋아해 늘 가슴에 강물이 흐르는지도 모릅니다. 우산 속에서 꼬옥 껴안고 가는 연인의 모습이 지난..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2
다가오는 산山 다가오는 산山 임 현 숙 옆집에 노부부가 살았다. 아침마다 부인은 화단에 물을 주고 이따금 세차도 했다. 남편은 부인과 외출할 때 잠깐 보일 뿐 조용한 사람 같았다. 어느 새벽, 삐오삐오~ 구급차가 오고 누군가 실려 나갔다가 아침결에 돌아온 후 밤이 되어 다시 911이 오고 부인의 울음..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1
앓고 나면 앓고 나면 임 현 숙 죽을 것 같던 어제가 지나고 퀭한 눈으로 맞이하는 아침이 처음 보는 세상 같다. 늘 바라보던 키 큰 나무가 훌쩍 더 보이고 파란 하늘도 더 높아졌다. 층계를 딛는 무게가 천근 같더니 사뿐히 날아오른다. 핼쑥한 얼굴이 조금 예뻐 보이고…. 건강하다는 것, 살아있다는..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7.01
나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 임 현 숙 개여울에 징검돌을 깨금발로 건너며 콧노래 부르는 아이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냇가에 앉아 소꿉놀이 하느라 즐거웠지요 나뭇잎 밥상위엔 다슬기도 있었고요 고운 모래알은 고슬고슬한 밥이었지요 어느 날엔 거머리에 물려 기함도 했다네요 어쩌다 동동 구루무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6.29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 임 현 숙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스베이거스 금빛 찬란한 은하수 그 물결에 부유하러 온 나는 주린 집고양이 저마다 빛나는 호텔에 들어서니 도박장이 눈 맞춤하고 홀린 사람들 곁 지나며 대박 한번 당겨보고 싶어 웅크린 손가락이 꼬물거리지 북적이는 인파, 명품 샵, 화려한 빌딩 따가운 햇볕이 호령하는 거리에 슬픔은 얼굴을 내밀지 못하네 팜 트리만이 손바닥만 한 그늘을 내어주는 거리 헐떡이며 기웃거리다 호텔 방에 들어서면 고요와 안식이 엄마처럼 맞아주어 고독하지 않은 곳 늙은 집고양이 집 밖에서 지낸 며칠 달러로 작은 행복 살 수 있었네. -림(20190528) 라스베이거스 임 현 숙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스베이거스 금빛 찬란한 은하수 그 물결에 부유하러 온 나는 주린 집고양이 저..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5.30
춘삼월의 눈꽃 춘삼월의 눈꽃 임 현 숙 아직 동트기엔 머언 새벽 달빛이 치렁한 듯 눈을 떠보니 폭포수처럼 함박눈이 펑펑 개구리도 깨어난 춘삼월 이 세상에 죄가 득실해 하늘이 은혜를 베푸나보다 가여운 세상 순결하라 순결하라 소복소복 눈꽃으로 복을 내린다. -림(20190308)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9.03.09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 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 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 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 철든 눈동자엔 ..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8.12.08
내 입술에 문패 내 입술에 문패 임 현 숙 꽃길을 걸을 땐 고마워~라는 소리 향기로운 노랫말처럼 귓불을 달구었지 자갈길을 달리며 미안합니다... 빈 마음 구겨지는 말 문패처럼 달고 사네 저 모퉁이를 돌면 신작로가 나올까 오늘도 부끄러운 문패 입술에 달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네. -림 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201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