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비가 되어
임 현 숙
소나기가 내리는 주차장에서 빗방울의 이야기에 마음 기울입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울퉁불퉁한 내 맘을 다독여 주네요. 우렁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좋아해 늘 가슴에 강물이 흐르는지도 모릅니다. 우산 속에서 꼬옥 껴안고 가는 연인의 모습이 지난날 그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콧잔등이 시큰해져요. 비는 첫 만남의 쑥스러움을 부드럽게 해주고 한 발자국 다가서게 하는 중매쟁이입니다. 한 우산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로 마음을 읽어 내일을 기약하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지요. 비는 언 땅을 녹이듯 마음 밭도 물렁물렁하게 하는가 봐요. 우산 없이 손을 꼭 잡고 해맑게 뛰어가는 저 연인들에게 비는 더욱 큰 사랑으로 내립니다. 잡은 손목 위로 뜨거운 아지랑이 지는 걸 보며 마음에 흐르는 고압 전류가 느껴져요. 비닐백을 머리에 이고 터덜터덜 걷는 이, 작은 지갑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는 이, 초연한 듯 털레털레 걷는 이….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내가 문득 추억에 잠기 듯
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빗속을 걷고, 비에 젖고, 비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잠시나마 푸릇한 그리움을 만나보는 시간이 삶의 피로회복제가 될 테니까요. 머릿속이 거미줄처럼 얽힌 날엔 주룩 비가 내리기를 기다릴 겁니다.
-림(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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