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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시2·다시 부르는 노래

고수머리의 비애

라포엠(bluenamok) 2019. 7. 3. 05:17




고수머리의 비애


                                                임 현 숙 




  내 머리는 반고수머리에다 숱은 어찌나 많은지 울창한 소나무 숲 같았다. 멋 내기를 알던 때부터 얼굴 화장보다 머리 매만지는데 공들여 거울 앞에 서면 투덜거렸었는데 세월의 사태로 반절은 뿌리 뽑혀 이제야 차분하니 보암직하다. 둘째 딸이 이런 날 꼭 빼닮아 언니의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가 부러워 시시때때로 입이 퉁퉁 불게 투정이다. 그럴 때마다 내 올챙이 적 생각 못 하고선 고수머리는 말을 잘 들어 드라이를 하면 멋지다고 지청구하며 무시해 버리곤 한다. 매일 한 시간 넘게 머리를 전기 고문하느라 노릿한 냄새가 진동하는데 '매직 파마'를 해도 한 달이면 구불구불해지니 내 나이 될 때까지 윙윙 머리카락의 비명소리 귀를 에우고 전기 계량기가 뱅뱅 돌 것이다.


-림(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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