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저녁 / 문정희 초겨울 저녁 /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7.11.25
짧은 해/김용택 짧은 해 / 김용택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 하얗게 피고 바람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11.08
가을 편지/고은 가을 편지/ 고은 詩, 김민기 曲, Song by 이동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10.15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9.26
모텔에서 울다 /공광규 모텔에서 울다 /공광규 시골집을 지척에 두고 읍내 모텔에서 울었습니다 젊어서 폐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처럼 첫사랑을 잃은 칠순의 시인처럼 이젠 고향이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얼굴을 베개에 묻지도 않고 울었습니다 오래전 보일러가 터지고 수도가 끊긴 텅 빈 시골집 같은 몸을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9.06
가을편지2 /나호열 가을편지2 /나호열 9월 바닷가에 써 놓은 나의 이름이 파도에 쓸려 지워지는 동안 9월 아무도 모르게 산에서도 낙엽이 진다 잊혀진 얼굴 잊혀진 얼굴 한아름 터지게 가슴에 안고 9월 밀물처럼 와서 창 하나에 맑게 닦아 놓고 간다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9.02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 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8.23
우화의 강 /마종기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8.18
가재미1, 2, 3/문태준 가재미 문태준(文泰俊, 1970 ~, 경북 김천 )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8.18
가짜 버스 정류장 / 마경덕 가짜 버스 정류장 / 마경덕 독일 치매 요양원 앞 가짜 버스 정류장 몸에 밴 그리움이 무작정 노인을 끌고 오면 벤치는 가출한 노인을 말없이 하염없이 무릎에 받아 앉힌다 돌아갈 곳도 왜 이곳에 앉아있는지도 잊어버릴 때쯤 누군가 다가와 커피 한 잔 하실까요? 친절한 한마디가 눈물을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8.09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을도 달빛에 잠..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8.05
나이 / 문정희 나이 / 문정희 몇 굽이 암벽을 오르니 드디어 설원 나무 한 그루 온몸 비틀며 앙상한 생명을 증거하고 있다 하늘과 대결하고 있지만 입술로 사랑할 일도 많지 않으니 회오리도 햇살도 부드럽기만 하다 이제 나에게 나이란 없다 없기로 했다 오직 홀로의 등정이 있을 뿐 스승도 더 이상 필..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7.07.20
되돌아보는 저녁 - 공광규 되돌아보는 저녁 - 공광규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저녁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잠시 쉰다는 이야기를 발들을 스치는 메뚜기와 개구리들 흔들리는 풀잎과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7.18
달빛 바느질 / 권대웅 달빛 바느질 / 권대웅 수백년 수천년 전에도 저 달을 바라보던 눈들을 생각하면 밤이 하나의 긴 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일직선에 깃들여 살며 이생도 저생도 달 아래 모두 한 공간 한 동네 어떤 마음자리였을까 굽이굽이 사무친 말과 옹이진 사연 풀잎 같은 눈들이 저기 저리 모..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7.11
소나기/곽재구 소나기 - 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6.14
빈 배 / 서상만 빈 배 / 서상만 폐선 한 척 잔파도가 깨워도 뭍으로는 더 밀리지 않겠다고 늙은 노을을 붙잡고 주저앉았네 가끔 저녁 바다가 적막해 물수제비를 날려보지만 조는 듯 죽은 듯 저 배는 미동도 없네 조타실 난간 위에 사뿐 내려앉은 저 갈매기 한 마리 이 배의 주인인 듯, 배의 정수리에 비린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5.20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4.09
봄비2/김용택 봄비 2 /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28
씨앗 - 신달자 씨앗 - 신달자 꾹꾹 누른다고 터지지는 않는다 나는 여러 번 눌러본 사람 밖으로는 고요히 숨이 머문 듯하지만 청력이 좋은 사람은 듣는다 이렇게 작은 살점의 깊은 곳에 저 먼 사막의 가쁜 호흡이 재빠르게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그를 부르듯 다시 꾹꾹 눌러 그 깊은 안을 불러보면 절대..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3.20
초록의 감옥 / 송수권 초록의 감옥 / 송수권 초록은 두렵다 어린날 녹색 칠판보다도 그런데 자꾸만 저요, 저요, 저, 저요 손 흔들고 사방 천지에서 쳐들어 온다 이 봄은 무엇을 나를 실토하라는 봄이다 물이 너무 맑아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보고 비명을 지르듯이 초록의 움트는 연두빛 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