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송수권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
새해 아침-송수권 새해 아침-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
꿈꾸는 섬 - 송수권 꿈꾸는 섬 - 송수권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 그 소녀가 흘려 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 길섶의 잔 풀꽃들도 모두 걸어 나와 길을 밝히더니 그 눈웃음결에 밀리어 나는 끝내 눈병이 올라 콩알만한 다래끼를 달고 외눈끔적이로도 길바..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
적막한 바닷가-송수권 적막한 바닷가-송수권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 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3.09
그때는 설레었지요 / 황인숙 그때는 설레었지요 / 황인숙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어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2017.03.09
나는 아직도 / 박재삼 나는 아직도 / 박재삼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 손을 드는 마음으로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2.26
님의 노래 / 김소월 님의 노래 / 김소월 그리운우리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가슴에 저저잇서요 긴날을 門박게서 섯서드러도 그립은우리님의 고흔노래는 해지고 저무도록 귀에들녀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들녀요 고히도흔들니는 노래가락에 내잠은 그만이나 깁피드러요 孤寂한잠자리에 홀로누어도 내..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2.25
그리움을 수선합니다- 김명서 그리움을 수선합니다- 김명서 오랫동안 묵혀둔 아버지의 문서를 버리는데 언제 오셨는지 나의 등 뒤에서 구겨진 문서를 하나하나 펴시는 아버지 소문대로라면 평생 남의 논밭만 경작하고 몽당 담배만 골라 피우셨다던, 그가 평생 경작한 꽃은 나였지만 나는 그에게 후끈한 파스 한 장 되..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2.09
어머니 / 임영화 어머니 / 임영화 ​ 좋아하는 생선이 무엇이냐 묻기에 멸치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생선이냐고 그건 그저 밑반찬 중 하나라고 좋아하는 꽃이 무엇이냐 묻기에 안개꽃이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꽃이냐고 그건 그저 장미꽃 들러리라고 어떤 사람 좋아하냐 묻기에 밑반찬 같고 들러리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2.06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이화은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이화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한 번도 사랑한다 말 한 적 없는데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시작도 끝도 없어야 정말 사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힘껏 늙어가는 중이네 시간의 흰 이마에 날마다 첫눈이 내리고 스무 살의 노인..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1.27
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7.01.26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용택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용택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7.01.21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12.17
사랑은 - 조병화 사랑은 - 조병화 사랑은 아름다운 구름이며 보이지 않는 바람 인간이 사는 곳에서 돈다 사랑은 소리나지 않는 목숨이며 보이지 않는 오열 떨어져 있는 곳에서 돈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마음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는 목숨 사랑은 닿지 않는 구름이며 머물지 않는 바람 차지 않는 혼자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12.08
가을이 가는구나 /김용택 가을이 가는구나 /김용택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11.24
가을의 시 / 곽재구 가을의 시 / 곽재구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젖은 꿈처럼 수면 위에 잠기고 수면 위에 내려온 칡꽃들이 수심(水深) 한가운데서 부끄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불.. 시인의 향기/나물 한 바구니(남) 2016.11.21
나는 아직도 / 박재삼 나는 아직도 / 박재삼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 손을 드는 마음으로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11.12
10월 /오세영 10월 /오세영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10.27
건널목 / 이영옥 건널목 / 이영옥 단풍잎 같은 밤의 차창에 마음 주지 말기를 세상에 존재하는 한 차단은 필요했으니 딸랑딸랑 종소리 내며 막아 주는 것 나를 대신해 흐린 불빛 찔끔찔끔 꺼내던 창을 지나 그 길이 너에게 가는 길이라고 믿었던 저녁들 눈꺼풀 없는 알전구처럼 밤낮 소등되지 않는 환한 ..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201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