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호 밴쿠버문학 수록/아픔보다 더한 아픔, 가을 기도, 봄비 오시네, 이제, 돌아가려네
아픔보다 더한 아픔
목에 쇠침이 박혔다
설마 했던
그놈이 내게도 들어왔다
대문에 빗장 건
이레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마른 갈대 입술을 열면 작렬하는 쇳소리
한솥밥 식구들은 겉보기엔 나이롱환자
망할 균이 흥해서 우쭐대는 중이지만
1차 2차 3차 저항군이
절대 백기는 들지 않을 것
분연히 항거하는 더운 숨소리
아프다
너와 내가
곁눈으로 눈치 보며
저 건너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
-림(20220116)
가을 기도
수수하던 이파리
저마다
진한 화장을 하는 이 계절에
나도 한 잎 단풍이 되고 싶다
앙가슴 묵은 체증
삐뚤거리던 발자국
세 치 혀의 오만한 수다
질기고 구린 것들을
붉게 타는 단풍 숲에 태우고 싶다
그리하여
찬란한 옷을 훌훌 벗고
겸손해진 겨울 숲처럼
고요히
고요히
사색에 들어
입은 재갈을 물고
토하는 목소리에 귀담아
오롯이 겸허해지고 싶다
나를 온전히 내려놓아
부름에 선뜻 대답할 수 있기를
겨울이 묵묵히 봄을 준비해
봄이 싱그럽게 재잘거리는 것처럼
나도 무언가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림(20211022)
봄비 오시네
봄비 오시네
사납게 파고들던 겨울비 저만치
보드라이 흐르는 봄비의 손결
회색빛 마을 화사해지리
다정한 빗살에
파랗게 일어서는 풀 내음
거칠었던 숨 다스리며
나도 한껏 푸르러지리
봄비는
저물녘 마음 강가
도란도란 흐르는
너의 목소리
겨울 그림자 길어진 날엔
새파란 봄비여
어서 오소서.
-림(20210506)
이제, 돌아가려네
길고 짧은 탯줄들
튼실해지라
노 젓던 바다
굶주린 파도가 야금거려도
으르렁거리며 건너왔지
삐걱거리는 목선
그만 쉴 때가 되었네
칭칭 감은 탯줄
이 땅의 주인 되라 풀어놓고
나그넷길에서 돌아서려네
순풍아, 서둘러 오렴
빛바랜 목선
푸른 깃발 나부끼며
고향 포구로 저어가려네.
-림(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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