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22.11.05 밴조선 게재/그래요

라포엠(bluenamok) 2022. 11. 6. 02:30

 

그래요

 

임현숙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을

목숨에 붙여 주셨어요

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데

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

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

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한 그루도 잘 돌보지 않으면

푸른 이파리 벌레 먹고 갈변하듯이

먹물 같던 머리 하얀 서리꽃 밭인 지금

제멋대로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에요

소화제 한 번 안 드시던 시어머니

팔십 오수를 누리다 하늘로 가셨는데

내 통장 잔고는 얼마나 될까요

 

여름을 지나며 옷 서랍을 정리하는데

입지 않고 그냥 낡고 있는 옷들 위로

올해 산 옷들이 거드름 피우고 있어요

섬광처럼 꾸짖는 소리 들려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단다.'

 

그래요

허리 꺾인 세월을 미끄러지며

욕심을 내려놓아야겠어요

느닷없이

잔고가 영이 된다고 해도

가뿐히 날아갈 수 있게요

그런데요

잔액을 알면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요

 

하나님

아주 잠깐만 통장 잔액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림(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