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유효기간 내 사랑의 유효기간 임현숙 거름망에 똬리를 튼 머리카락 한 줌이 문득 고맙습니다 몇십 년을 거품으로 박박 비비고 수건으로 와락 와락 주물러도 낙엽 지듯 떨어진 자리에 솔가지같은 새순이 다시 숲을 이루니 내 삶의 유효기간 동안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내 생각을 먹고 나뭇잎처럼 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16
사랑할 때는 사랑할 때는 임현숙 사랑할 때는 거친 파도가 출렁이는 저 블랙홀 속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솟구친다 사랑은 불덩어리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작열하는 태양 마그마에 접속하는 순간 폭죽 소리 땅을 가르고 불꽃 송이가 피어난다 태양을 닮은 한 송이 꽃이... 2013.01.13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14
서리(霜) 서리(霜) 임현숙 밤새 앓던 아버지의 잿빛 신음이 아침 마당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눈물지었습니다 느즈막이 얻은 막내딸 결혼식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시린 꽃으로 피었습니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털모자로 백발을 감추듯 자신의 무능력도 깊이 묻고 싶으셨을 내 늙으신 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12
겨울비에 베이다 겨울비에 베이다 안개비 임현숙 댓 살 같은 빗발이 무르팍을 쪼개며 발가락을 푸르딩딩하게 물들인다 빗소리에 설레던 시절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겨우내 젖은 하늘이 야속한데 등줄기를 가르는 겨울비의 날 선 시선이 허겁지겁 길을 건너는 노약자 휠체어 바퀴에 칭칭 감긴다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11
버리지 못하는 것들 버리지 못하는 것들 임현숙 잊고 살다 이사 갈 때나 꺼내 보는 애물단지들... 개선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못다 한 언약 젊은 날의 꿈도 아마 평생 안고 갈 것이다 공허한 날 켜켜이 묵은 삶의 궤적들을 꺼내다가 다시 깊이 숨긴다 먼지도 추억도.. 2013.01.06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07
바닷물이 짠 이유 바닷물이 짠 이유 임현숙 서러워서 그리워서 아파서 감격해서... 흐르던 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저 일렁이는 풍랑 한 끄트머리에 내 눈물도 소금꽃으로 피어 하얗게 부서진다 바닷물이 짠 이유를 이제 알겠다. 2013.01.06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07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안개비 임현숙 흰 꽃잎 날리듯 눈이 내리면 그리운 사람이 더욱 그립다 추워서 발그레한 귓불이 앵두처럼 예쁘다며 따고 싶다 속삭이던 당신, 심장 천둥소리 들킬까 봐 한 걸음 물러섰지만 그날부터 내 마음은 당신의 포로였지요 해일처럼 밀려와 눈멀게 하던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05
겨울 밤안개 겨울 밤안개 안개비 임현숙 공습경보도 없이 안개가 겨울밤을 습격하자 도시는 비명도 못 지르고 백기를 듭니다 동장군 바람조차 침묵하는 밤 불 켜진 창문마다 창틈을 꼭꼭 여미지만 최면에 걸린 듯 안갯속에 빠져듭니다 밤이 깊을수록 소리 없이 노략질하는 안개를 창을 통해 내다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04
새해라는 소쿠리에 무엇을 담을까 새해라는 소쿠리에 무엇을 담을까 안개비 임현숙 한 세월이 지나가고 새로운 시절이 왔네 오고 가는 건 진리이니 궂은 날이 지나고 새해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네 희망 빛으로 다가온 소쿠리 번호 '2013' 빈 소쿠리에 무엇을 담을까나 첫날엔 소망의 기도를 가운데 모두고 여백엔 詩心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1.01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안개비 임현숙 어서 오십시오 나목 사이로 솟아오르는 새날이여 고난의 장벽을 뛰어넘어 텅 빈 곳간에 금빛 햇살이 넘실거리게 하소서 저 북방 거센 바람으로 나이테 늘어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티끌을 키질하소서 웃음을 잃은 이에게 소망이 열리는 박씨를 심어 희망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31
광야에서 광야에서 안개비 임현숙 세월의 창에 마지막 이파리처럼 걸린 12월이 지려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사목처럼 선 나목은 북풍이 몰아칠 때면 잉잉잉 고드름 세월이 서럽지만 "어떻게 지내니. 네가 걱정이 돼서…" 포근하게 말을 걸며 하얀 날개이불을 덮어주는 함박눈 친구가 있어 겨울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28
사랑 참 얄궂다 사랑 참 얄궂다 안개비 임현숙 불꽃처럼 사랑하던 시절엔 잔뜩 토라져 있다가도 '사랑해' 한 마디에 배시시 웃었어 미운 마음에 이불 꽁꽁 여미고 누웠어도 '미안해' 라며 더듬는 손길에 와르르 무너지는 게 사랑이었지 그렇게 사랑은 서로가 지켜나가는 것이래 하지만 세월이 가면 사랑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27
그리움은 썰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움은 썰물이 되지 않습니다 임현숙 사랑은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임을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어둔 밤길을 동행하는 것임을 당신은 모릅니다 사랑은 험준한 산을 밀어주고 당겨 주며 함께 넘는 것입니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란 마음입니다 흰 돛배 들어오기를 학수고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22
야누스 12월 야누스 12월 안개비 임현숙 12월 거리엔 기쁜 성탄이 울려 퍼지고 빨강 초록의 물결이 눈부시게 유혹하지만 그대의 시선이 자선냄비에 던져지는 동전처럼 떼구루루 떨어진다. 삶의 등짐이 버거워 영혼마저 팔 듯한 사람아, 미치도록 고달파도 부디 힘내시라. 고난과 생명의 십자가처럼 두..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16
아픔 아픔 안개비 임현숙 고지서 함에 줄 지어 선 고지서들 뽀얀 살결 보드라 한 데 마음은 냉정하구나 하루 하루 다가오며 날 쏘아보는 숫자들. 잔뜩 독이 오른 것부터 줄 세워 보지만 서로 먼저라 아우성이고 통장은 묵비권 행사 중. 2012.11.30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15
꿈길 꿈길 안개비 임현숙 가슴 저리도록 보고 싶어도 꿈길밖에 길이 없어 날마다 그 길을 가네 가도 가도 끝없는 몽환의 길에서 해와 달처럼 숨바꼭질하는 당신과 나 그리운 이 마음 어이하려나. 꿈길을 헤매다 깨어나 보면 먼동이 트기엔 이른 새벽 비구름 사이로 철새는 날아가는데 집으로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10
땡땡이 땡땡이 안개비 임현숙 보충 수업에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언니 옷 걸치고 극장 드나들던 친구들은 시집가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그 길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내가 흰머리 나는 나이에서야 화끈한 땡땡이를 쳤다. 오늘 난 하나님의 시간을 슬쩍했다. 감기 몸살이라는 핑계로... 12..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10
눈이 내리면 좋겠어 눈이 내리면 좋겠어 안개비 임현숙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세상 하얗게 눈이 쌓였으면 좋겠어 아무도 몰래 소복소복 눈길에 그대라는 발자국 찍어 겨우내 내 곁에 묶어둘 거야 몇 날 며칠 눈이 펑펑 쏟아져 세상이 눈 속에 갇히면 시름을 묻어놓고 하얀 눈꽃 속에 당신과 나 눈사람 부부 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04
겨울비 거리에서 겨울비 거리에서 안개비 임현숙 밤비 내리는 정류장에 홀로 서 있습니다 가로등에 부서지는 빗줄기가 안개처럼 뽀얗습니다 다가왔다 사라지는 자동차의 힐끔거리는 눈빛을 외면합니다 내가 기다리는 따스한 품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습니다 오래된 가을이 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03
억새 억새 안개비 임현숙 휘영청 달빛에 애원해도 지치도록 햇살에 몸부림해도 지나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데 바람에게 하소연한들 뭐하노 흐트러진 백발 달빛이 가지런히 빗겨놓아도 한량 바람 스쳐 가면 스러져간 회한에 꺼이꺼이 산발한 머릿결로 세월의 발자국을 지운다. 121201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