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994

양은 도시락의 추억

양은 도시락의 추억 안개비 임현숙 교실에 겨울이 찾아들면 조개탄 난로 위에 노란 도시락 탑이 쌓였지 김치가 통 안에서 볶아지고 누룽지 냄새로 코가 씰룩거렸어 난로 뒤에 앉은 친구는 수업 시간 내내 도시락 층 바꾸느라 바빴고 이 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도시락 뚜껑 여는 소리 요란했지 김치와 콩자반, 달걀 부침이 단골 메뉴였지만 꿀맛이었어 어쩌다 소시지를 발견하면 전장에 화살이 쏟아지듯 젓가락이 도시락을 노략질했지 소시지 주인은 한 조각도 못 차지했어 쉬는 시간의 도시락 까먹기는 날렵하게 속전속결 하는 전투 같았지 선생님 오신다는 신호에 입안에 밥 물고 냄새는 나 몰라라 시침 뚝 떼었어 모른 척 하신 선생님은 아마도 비염을 앓았던 거야. 2012.11.29 림

고향 그리워

고향 그리워 임현숙 한여름 구슬땀을 말리던 바람 들과 산에 구절초 수를 놓으면 뭉게구름 한가로이 재를 넘고 구절초 향기 따라 국화꽃이 피었지 노란 꽃, 자주 꽃 송이송이 마다 무슨 사연 그리 많길래 저리도록 서럽게 피었을까 꼭 다문 꽃 입술이 방그레 웃는 날에도 오도 가도 못하는 내 그리움은 먼 산 바라보며 노래만 부르네. 2012.11.13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