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994

세월 강

세월 강 임 현 숙 나뭇잎이 우수수 지며 세월 강물이 빠르게 흘러간다 벌거숭이 시절이 저만치 흘러가고 연분홍빛 꿈이 먼바다로 갔다 꽃이 피고 지고 새가 울고 낙엽 날리고 눈이 내리는 세월 강 굽이굽이 내가 흘러간다 어머니가 흘러간 그 물줄기 따라 판박이 딸도 허우적거리며 흘러간다 암초에 부딪혀 살이 깎여도 물살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순 즈음 세월 강엔 추억이 아롱지지만 거슬러 갈 수 없는 강물이여 또 한 굽이를 돌아 떠 내려 간 청춘을 따라가며 언젠가 이 지점을 지날 내 아이를 위해 이정표를 세운다 '이곳은 그리움이 깊고 회한이 몸부림치는 늪'. -림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안개비 임현숙가을엔무엇이 되어도 좋으리들녘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논두렁 가에 널브러진 가여운 들꽃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그 무엇이라도 감사하리노랗게빠알갛게물들어 가는 풍경 속에저무는 노을이어도 행복하리호흡 있음이 경이롭고아직 내 이름을 부르는 그대 있으니가을엔그 무엇이라도 좋으리.2012.09.04 림 A:link { text-decoration: none; } A:visited { text-decoration: none; } A:active { text-decoration: none; } A:hover { text-decoration: none; }@font-face {font-family:갈잎;src:url('https://t1.daumcdn.net/p..

또 한 번의 생일에

또 한 번의 생일에 임현숙 가을 문 앞에서 어머니는 낙엽을 낳으셨지 바스러질까 고이시며 젖이 없어 홍시를 먹이던 어미의 맘 반백이 넘어서야 알았네 소금 반찬에 성근 보리밥 밀 풀 죽도 먹어보았지 또 한 번의 생일에 맛보는 이밥에 기름진 반찬도 엄마 생각에 쌉싸름하네 이제 생일의 의미는 소풍 길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는 것 영혼의 포장지는 낡아가는데 아직도 마음은 신록의 숲이어서 가을빛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 내 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 함께하던 모든 것들이 어른거리네 유리창을 쪼갤 듯 쏟아지는 햇살이 환희로 숨 가쁘게 하는 구월 둘째 날 어딘가의 추억 속에 유월의 장미로 살아있다면 가파른 소풍 길이 쓸쓸하진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