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집이 있었습니다 그런 집이 있었습니다 임현숙 길모퉁이를 돌아 담쟁이가 엉클어진 축대 높은 집, 돌계단을 올라서면 능소화가 수북하던 담장 옆에 대추나무가 유령처럼 서 있고 통나무 벤치가 놓인 마당에 여름밤이면 오빠네랑 언니네랑 별빛을 헤아리며 삼겹살에 술잔을 기울이던 곳 겨울이면 남쪽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7.04
푸른 갈망 푸른 갈망 임현숙 땡볕이 수그러든 저녁 더운 기운을 몰아내려 창문을 연다 차르르르..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일까 귀 기울이면 나뭇잎을 적시는 물방울 소리, 스프링클러 비를 맞고 온종일 기진한 풀잎이 푸른 고개를 든다 하루만이라도 단비에 흠뻑 젖어 푸르게 푸르게 일어서고 싶다.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7.03
햇살 나래 아래 햇살 나래 아래 임현숙 레인쿠버*에 황금 햇살 나래 펴는 날 에어컨 없이 거리를 누비면 작열하는 햇살 나른한 팔뚝 위에서 주근깨를 볶아 에어컨을 켤까 말까 주유소 눈치 살피다 마악 쪄낸 고구마가 되어도 비 내리는 날 위해 김장을 하듯 햇살을 피부 깊숙이 담는다. 2013.07.01 림 *레인..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7.02
모닝커피, 해일 모닝커피, 해일 임현숙 별상자* 커피 알갱이를 갈아 커피를 내리며 컴퓨터를 뒤적이다 와락 밀려드는 해일에 침몰한다 깊은 커피 향, 꿈결에 그리워하던 어느 숨결이 기지개를 켜는가 이 찰나의 황홀함이 행복, 카타르시스! 2013.06.29 림 *별상자; 모 커피 브랜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30
황혼 황혼 임현숙 첫 아이는 허리 틀어 낳아 미역국도 엎드려 눈물에 말아 먹었지 둘째는 한밤중에 허겁지겁 달려가 기함했다가 깨어보니 달덩이가 곁에 있었네 그 후 몇 해 지나 막내를 가져 사흘 옆구리 앓이 끝에 배로 나온 아들이 삼대독자라네 손 귀한 집안에 태어났으니 딸이라도 오냐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8
사이버 카페에서 사이버 카페에서 임현숙 저물어 가는 인생 강가 사이버 카페에 앉아 너를 기다린다 외로움에 그리움에 마음과 마음의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파도처럼 다가와 그리움을 남겨두고 흔적없이 사라지는 그런 만남은 되지 말자 외로움도 그리움도 깊어지면 병이 되니 우리 서로 새록새록 솟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7
어둠 속에서 어둠 속에서 임현숙 어둠이 내리면 쓸쓸함이 그리움을 부르고 구성진 노래 가사에 눈물이 핑 돌아 가슴이 미어집니다 누구를 탓할 일 아니건만 서운함이 밀려오고 옛일을 퍼올리며 그리워하는 건 애틋한 미련 때문일까요 창 밖에는 초여름 비가 닦달하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망울이 보고..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5
詩의 길을 잃다 詩의 길을 잃다 임현숙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마음을 갈고 닦아도 노래를 잃은 카나리아, 시인은 달 뜨는 밤 기다려 달빛 길 걸어 보고 별 무리 쫓아 밤하늘을 날아도 보지만 바위가 되었을까 꽁꽁 얼어붙었을까 마음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구나 맷돌 같은 삶의 무게도 시가 있어 깃털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4
추억의 그림자 추억의 그림자 안개비 임현숙 칼바람에 마음이 베여도 어금니 물어 아픔 삼키고 말 없는 바위보다 바람 소리 들려 좋은 추억 속 그림자 사람아 비 내리는 날이면 김 서린 유리창에 쓰고 지우던 보고 싶다는 말, 흔적이 사라질까 아쉬워 유리창을 닦지도 못하는 돌아보면 더 그리운 사람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2
사랑이여 사랑이여 임현숙 사랑, 바람처럼 다가와 휴화산에 부싯돌을 당겼다 네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 붉히던 스무 살엔 모닥불처럼 타올랐지만 붉은 노을에 투영된 사랑, 네 앞에선 거침없이 가면을 벗고 싶다 사랑, 그 깨어나기 싫은 아름다운 꿈이여! 2013.06.19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0
그립다 말하면 그립다 말하면 안개비 임현숙 서성이는 마음이 추억하는 건 가슴에 망울진 그리움이야 기쁨보다 슬픈 날 더 많았지만 못내 가슴이 미어지는 건 지워진 우리 이야기들이 맥박으로 뛰고 있는 이유지 터질 듯 보고 싶은 날에도 마음 비워 애써 외면하는 건 그립다 말하면 더 보고 싶어서 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20
삶 삶 임현숙 발보다 큰 신발을 신고 인생길을 가려니 애꿎은 발가락들이 앓고 있네 아무리 기다려도 발은 더 자라지 않고 발에 맞는 신발은 세월 따라 닳아졌지만 저만치 앞서 간 친구 때때로 돌아보며 이끌어 주니 그 사랑 눈물겹도록 고마워 이 여정 포기 못 하네 상처 난 발가락 사랑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12
다섯 개의 상자 다섯 개의 상자 임현숙 아들이 보내온 다섯 개의 상자엔 지난 사 년간 대학 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하나를 열면 훅 고독과 허기가 위장을 훑고 하나를 열면 매서운 추위와 절제가 심장을 찌른다 또 하나, 하나... 마지막 하나를 눈물로 여는 순간 낭만과 열정이 깔깔거리며 튀어나온다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11
마지막이란 말은 마지막이란 말은 임현숙 마지막이란 말은 정녕 슬픈가 더는 사랑하지 않아 돌아선다는 말이라면 마지막을 결코 입에 담지 말아야 하리 마지막이란 말은 정녕 슬픈가 개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험한 여정 끝에 꽃길을 걷게 된다면 마지막을 버선발로 마중 나가야 하리 마지막이란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01
유월 유월 임현숙 유월은 설익은 연애 첫 만남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풋사과의 싱그러움이 아삭아삭 씹히는 창을 열면 설레는 풍경들이 달려와 머물고 싶은 간이역 아직은 신비로운 풍선 여행 2012.06.01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6.01
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을 주는 사람 임현숙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건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가슴에 꽂혀 시들기 전까지 날마다 바라보며 속삭인 추억이 깊은 곳에 고여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직 향기로운 꽃이라는 말이다 네 가슴을 물들일 수 있다면 붉은 장미 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5.30
박꽃 같은 하루가 저문다 박꽃 같은 하루가 저문다 임현숙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눈을 떠서 커피를 내리고 쓰다만 글을 들여다보며 그립다는 말을 사랑해로 바꾸고 다시 지우고 보고 싶다로 고쳐 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만성 소화불량이 되어 거푸거푸 보고 싶다를 토해 놓는다 박꽃 같은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5.29
그리움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그리움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임현숙 기다림으로 수척해진 마음을 그리움이 잔인하게 살을 바릅니다 기찻길이 보이는 곳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막내딸을 기다릴 엄마가 옆구리 살을 엡니다 장손자가 어련히 돌보고 있으련만 지붕에 자라났던 아카시아가 다시 그늘을 드리운 건 아닌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5.28
유월, 붉은 오페라의 서곡 유월, 붉은 오페라의 서곡 임현숙 연두 이파리 짙어져 봄꽃은 지고 작약, 장미의 아리아가 폭풍 사랑을 예고합니다 벙긋이 콧소리로 시작되어 겹겹이 여민 붉은 치마 한 자락 한 자락 열 때마다 수줍은 듯 요염한 듯 벌, 나비 부르는 유월은 붉은 오페라의 서곡 꽃 노을로 타오를 우리 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5.27
엄마와 바나나 엄마와 바나나 임현숙 사시사철 널려있는 바나나지만 흔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 욕실에서 나오다 쓰러진 엄마는 뇌출혈로 떠나시기 전 바나나가 먹고 싶다고 입을 달싹거리셨다 코로 마시던 미음이 허기져 바나나로 먼 길 떠날 채비를 하셨나 보다 평소에 먹고 싶던 게 겨우 바나나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3.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