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도 마음이 부셔요 오늘 밤도 마음이 부셔요 나목 임현숙 첫 마음 그대로 오롯이 간직한다는 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지요 차츰 그 설렘의 파장은 김 서린 유리창에 써내려간 글처럼 흐려져 가요 꽃나무를 가꾸듯 마음도 애지중지 돌봐야 해요 사람의 마음은 지네 발 같아서 갈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17
순전한 마음 순전한 마음 나목 임현숙 잠잠한 자선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꼬마 눈웃음 어여삐 꼭 쥔 고사리손을 냄비 안에 펼친다 뎅그렁뎅그렁 탄일종을 울리는 따뜻한 동전 두 잎 하늘에 쌓는 순전한 향기 환히 웃는 아빠 눈 속에 가장 사랑스러운 별 하나 떠 있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15
결혼기념일 즈음 결혼기념일 즈음 나목 임현숙 설렘과 아쉬움의 날들을 접어 원앙새 보금자리를 틀었지요 동지처럼 적군처럼 세월이 흐른 후 두 눈에 콩깍지 벗겨지고 달콤하던 밤 밋밋해졌어도 지갑 속에 낡은 신분증처럼 늘 품고 사는 부부라는 사이 입덧으로 삐쩍 말라 누워있을 때 먹고 싶다는 빈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13
내가 만일 내가 만일 나목 임현숙 그대 홀로 시린 겨울밤 내가 만일 바람이라면 단숨에 날아가 속삭일 텐데 내가 만일 함박눈이라면 적막강산에 꽃 등불 밝힐 텐데 하지만 난 그저 사람이라서 멀리서 큐피드 화살만 쏘아댄다네 가도 오도 못 하는 태엽 풀린 인형이라서…. 2015.12.06.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10
겨울비, 그 따스함에 대하여 겨울비, 그 따스함에 대하여 나목 임현숙 모락모락 하얗게 겨울비 내려 애달피 뒤척이는 밤 손톱 달은 기운지 오래고 얼굴엔 미로가 주름지는데 아직 더운 가슴은 홀로 쩔쩔 끓는구나 창가에 퍼덕이는 빗방울 소리 서편 하늘에서 날아온 물새일까 자장가 불러주는 저 날갯짓.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08
솔잎 향기따라 솔잎 향기따라 나목 임현숙 오색 무희들 나비춤으로 가을의 연회는 막을 내렸네요 검은 선글라스 카메라 셔터 소리 먼 마을로 돌아가고 바람의 긴 수염 낙엽을 쓸어내면 이제야 눈에 드는 소박한 솔 이파리 칠면조 같은 나무들 들러리로 가을을 춤추게 하더니 꽃 지고 잎 진 앙상한 등성..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07
빈 잔에 넘치는 평화 빈 잔에 넘치는 평화 나목 임현숙 시인이 되고자 머리 싸맨 적 없어도 바람의 나라에선 나 같은 무지렁이도 시인이 된다 해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구성진 노래가 되고 울컥 게워놓은 물거품 같은 언어들이 시라고 하더라 이름을 드날리려함 아니요 얄팍한 내 마음의 노래가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05
슬픈 문자文字 슬픈 문자文字 나목 임현숙 '전화가 끊겼어 좀 도와주라 쏘리...' 멀리 사는 친구의 문자가 슬프게 밤을 떠도네 오죽하면 깡마른 내 지갑에 부탁할까 끼니도 거르는 건 아닐까 신神은 누구의 편인지 믿음으로 열심히 산다고 다 복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네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서울 거리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02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나목 임현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 시간의 나래에서 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 이마를 낮춰 손끝에 가시가 돋고 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 대못이 박히고 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 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 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 철든 눈동자..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2.02
느낌이 깊은 사람이 좋다 느낌이 깊은 사람이 좋다 나목 임현숙 아침을 가볍게 먹고 싶어 냉장고를 뒤진다 껍질에 줄만 그으면 수박이 될 지도 모를 단호박이 아침 식사로 당첨되었다 진초록 속에 감춘 오렌지빛 노랑 속살은 밤처럼 고소하고 홍시처럼 달콤하다 울퉁불퉁 못났어도 파고들수록 입맛 다시게 하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30
눈이 내리면 좋겠어 눈이 내리면 좋겠어 나목 임현숙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세상 하얗게 눈이 쌓였으면 좋겠어 아무도 몰래 소복소복 눈길에 그대라는 발자국 찍어 겨우내 발목에 묶어둘 거야 몇 날 며칠 펑펑 쏟아져 세상이 눈 속에 갇히면 시름을 묻어놓고 당신과 나 눈사람 부부 되고 싶어.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27
겨울 길목에서 겨울 길목에서 나목 임현숙 별빛을 사랑해 외롭고 달빛이 그리워 서글픈 시절은 갔다 지붕 위에 서리꽃 눈부신 아침 밤새 꽁꽁 언 감들이 따스한 볕 사랑에 눈물짓는다 응달엔 무서리 울상이니 햇볕이 얼마나 미더운가 겨울 길목에서 우리도 마음의 난로에 불을 지피자 해처럼 너그러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25
가자, 부화孵化의 강으로 가자, 부화孵化의 강으로 나목 임현숙 빈 가지가 허공을 찌르니 겨울이 와락 달려든다 짜릿한 단풍 앞에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 가을을 보내고 산란기의 연어처럼 부화의 골짜기를 서성인다 연어가 어미로서 올챙이적 시내로 거슬러 오르듯 나의 시여 가자, 부화의 강으로 네가 태어난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22
살이 찔수록 행복한 건 살이 찔수록 행복한 건 나목 임현숙 그리 멀지 않은 옛날 하루 세끼 근근이 챙겨 날아가는 방귀도 채 먹었다던데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먹을거리 풍요로워 애완견도 포동포동 굶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네 사람도 짐승도 식이요법 한다지만 살이 오를수록 행복한 건 사랑, 생각 그리고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9
낙엽 편지 낙엽 편지 나목 임현숙 낙엽은 지는데 별보다 먼 거리에서 사무친 그리움에 야속한 세월만 헤아립니다 한 권의 시집 속에 담겨있는 그리움과 사랑의 언어들을 모두 나열해 놓아도 담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나비처럼 날아와 안기는 낙엽이 당신의 편지 같아 두근거립니다 차곡차곡 쌓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7
가을아 안녕 가을아 안녕 나목 임현숙 해거름 코스모스가 강변에서도 골목 어귀에서도 감탄사를 보내오며 가을이 왔지요 물빛 높은 하늘 뜨겁게 타오르던 단풍 기분좋게 살랑이던 바람까지 크고 작은 느낌표로 설레게 하더니 아직도 못 다 부른 노래 풍경 속에 머무는데 동글동글 마침표를 그리며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5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목 임현숙 비어가는 11월 햇살이 짧은 그림자를 거두면 한 뼘 멀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이 밀고 당긴다 멀어진 만큼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 바람 든 무속처럼 한여름 정오의 사랑이 지고 있으므로 슬퍼하지는 말자 꽃이 져야 씨앗이 영글 듯 우리 사랑도 가슴 깊은 곳에 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4
멜빵 치마 멜빵 치마 나목 임현숙 무릎 아래 반 뼘 정도 내려오던 체크무늬 멜빵 치마 물려 줄 동생도 없고 쑥쑥 자라는 키 때문에 내 유년의 옷은 늘 무릎 아래 길이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는 살짝 보이는 허벅지가 앙증맞은데 치렁한 내 치마는 기도하는 수녀처럼 엄숙했다 엄마는 우후죽순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3
11월에 내리는 비 11월에 내리는 비 나목 임현숙 숨겨진 가을 이야기가 쏟아진다 수다스러운 뺑덕어미처럼 후드득후드득 알아들을 수 없는 줄거리가 자동차 지붕 위에서 침을 튀긴다 단풍나무에 은행이 열렸대 글쎄 은행나무가 붉게 물들었다네 지칠 줄 모르는 입담으로 너와 나의 가을이 뒤엉켜 물빛 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2
식어가는 찻잔 식어가는 찻잔 나목 임현숙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아 국화차 두 잔 나란히 우려놓고 밤마다 빌고 비는 그대의 안녕 햇살에 반짝이는 건 내 눈물이라고 빈 자리 바라보며 독백하는 이 밤 싸늘히 식어가는 찻잔에 가득 고인 그리움 언제쯤 우리 눈과 눈 바라보며 마음 다할 수 있을까 식..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