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에 사랑하기에 나목 임현숙 누군가의 마음을 통째로 갖고 싶다는 건 집착일 거예요 어디 마음 무게를 달 수 있던가요 그 넓이를 잴 수도 향기를 맡지도 못하니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물은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마음의 행로를 어찌 막을까요 네게로만 이어진 길로 너도 오기를 바라지만 사랑..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06
戀書 戀書 나목 임현숙 갈잎 비처럼 내리는 날에는 노란 은행잎을 닮은 한 통의 편지가 그립습니다 추억의 서랍에서 잠자던 편지를 깨워봅니다 달달한 속삭임이 허기를 달래주고 해 묵은 장처럼 감칠맛 나는 구절구절이 무거운 하루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오늘은 나도 누군가의 외로움을 물들..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03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 나목 임현숙 11월의 나무는 공연을 마친 연극배우처럼 관객이 썰물 진 무대 붉은 조명등을 하나둘 끈다 붉은 기염을 토할 때마다 고막을 찢던 탄성 더욱 열연하던 이파리들도 박수받으며 퇴장한 후 못다 한 욕망의 갈색 등 바람의 밭은기침에 아슬아슬한 초침의 그네를 탄다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1.01
기다림의 바닷가에서 기다림의 바닷가에서 나목 임현숙 어제 바다 건너에서 당신이 애타게 피웠을 저녁노을을 오늘 붉어진 눈으로 바라봅니다 파도는 채찍질하며 더 벗어놓으라 하는데 목숨밖에 내릴 게 없는 빈(貧) 자아(自我)가 자맥질합니다 밀려오는 너울을 끌어당기고 당기면 저 붉은 노을 품에 안길 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9
바람이 산다 바람이 산다 나목 임현숙 내 오른 무르팍에 세 든 지 두어 해 된 바람이 살다 얼마 전 손목으로 이사했다 여름엔 기척 없이 지내더니 요즘 가시가 돋아 콕콕 찔러대는 통에 밤잠을 설친다 집주인 행세를 하기 전에 어서 내쫓아야 할 텐데 파스로 무장해봐도 날 선 바람에 밤새 우는 문풍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8
선물 선물 나목 임현숙 유리 눈물 잔일랑 골방에 밀쳐두고 황금 미소 잔 고이고이 받들어 날마다 햇살 미소 담뿍 담아 드리오니 그대여, 이 잔이 산삼인 듯 녹용인 듯 고단한 하룻길 날개 단 듯 걸으소서.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4
어서 겨울이 왔으면 어서 겨울이 왔으면 나목 임현숙 바람의 숲을 에돌아 가기엔 늦은 저녁 별빛 도도히 부서지는 숲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웅성거리는 바람의 말이 온 가슴 못 자국을 헤집어 아린 상처 발갛게 진물 납니다 어둠 속에서도 단풍은 뜨겁게 웃는데 젖은 내 미소는 찬연한 가을 앓이로 시름시름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3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목 임현숙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침 안개가 걷힌 후 해가 빛나듯 눅눅한 마음밭이 보송보송해지는 것 우울한 일상에 풀죽어 있다가도 생각나면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끝없는 관심과 배려로 다가가는 것 보고 싶어 그 사람의 창가를 기웃거리고 그리워 먼 하늘 바라보다 구름이 되는 것 행여 소식 올까 편지함을 열어보고 반가운 이름에 즐거운 종달새가 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 오는 날 한 우산 속에 있고 싶은 것 두 마음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임 현 숙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침 안개 걷힌 후 해가 빛나듯 눅눅한 마음밭이 보송보송해지는 것 우울한 일상에 풀 죽어 있다가도 생각나면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 것 누군..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2
참말로 수상하다 참말로 수상하다 나목 임현숙 온 동네가 수상하다 며칠째 하얀 안개 커튼을 드리운 채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잠복근무 중인 게 틀림 없다 움직이는 빨간 안개등이 수군수군 누군가와 연락하는 중 내 마음의 은밀한 사생활을 꼭꼭 숨겨야겠다.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2
어미의 마음 어미의 마음 나목 임현숙 가을 나무에 아직 푸른 잎 붉게, 샛노랗게 물들고 있는 잎 벌써 바싹 마른 잎 한 뿌리에서 자라났어도 손가락처럼 다르다 바람이 불면 고운 이파리들 살랑살랑 왈츠를 추지만 벌벌 떠는 마른 이파리가 안쓰러워 가을 나무는 윙윙 운다 길고 짧은 내 분신들 자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20
거품을 거두고 나면 거품을 거두고 나면 임 현 숙 팔팔 끓는 물에 소고기를 넣으면 거품이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말끔히 걷어내고 무를 넣어 진하게 우려내면 맛깔스러운 국이 된다 고난이라는 열탕에 빠져 발버둥치며 하늘을 탓했는데 내 안에서 녹아 나온 거품이 부글거릴수록 맑아지는 시선과 생각 물욕이 얼마나 어리석은 거품인지 깨우치라고 험한 산을 넘게도 불바다에 빠지게도 하셨구나 거품을 바닥까지 토해내고 나니 소태맛처럼 쓴 삶의 맛이 달고나 맛이다. -림(20151013)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14
해바라기꽃 해바라기꽃 나목 임현숙 새벽하늘에 튀어 오른 해 따사로운 손길에 함박웃음 지으며 구름과 비가 심술부리면 풀 죽어 고개 숙이다가도 햇살 한 자락에 벙글어지는 지고함이여 꽃밭에 피어나 사방에 연적이라 모가지는 자꾸 길어만 가는데 가을이 깊어 심장이 까맣게 타들어 가도 무장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14
詩 詩 나목 임현숙 초승달 옆에 점 하나 그려넣고 눈[目]이라 우기면 詩가 될까 널 생각하면 온통 거미줄뿐인 무허가 건물 쓸고 닦아 채색해도 가분수 오늘도 해는 지고 다시 또 달과 별을 만지며 신음하는 몽당연필.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10.11
그 추석이 그립구나 그 추석이 그립구나 나목 임현숙 그 추석에는 언니 오빠 형부 시누이 다 모여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슬쩍 잃어주며 흥을 돋우는 남편 서로 잘 못 친다고 탓하는 오빠와 형부 그 틈에서 "고"를 외치며 깔깔거리던 나 뒷손이 착착 잘 붙는 시누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9.29
가을의 편지 가을의 편지 나목 임현숙 가을이 편지를 보내옵니다 낙엽 갈피에 갈바람으로 꾹꾹 눌러쓴 자국마다 어느 가을날의 추억이 도드라집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찢으며 돌아서던 날 단풍은 서럽게 붉었고 연민이 발뒤꿈치를 부여잡았습니다 사랑은 지독한 열병이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지만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9.19
가을 아침에 가을 아침에 나목 임현숙 흙빛 까칠한 가랑잎 연둣빛 흔적 자취 없고 발길에 채는 쓸쓸한 낭만 거울 속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여자와 닮았다 오늘도 그 여자 마른 입술에 쓸쓸함이 엿보지 않게 갈바람이 티 나지 않게 살짝궁 불씨를 지핀다 봄처럼 피라고 단풍처럼 도도하라고 주문을 걸..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9.18
정전 정전 나목 임현숙 광풍으로 정전되자 전기를 먹고 사는 것들이 모두 휴가 중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기력하다 인터넷을 헤매던 마음이 길을 잃고 손전화를 주무르던 손가락엔 신경질이 돋는 중 초라한 허기는 불 켜진 식당으로 밀물처럼 몰려든다 전기 없는 하루가 어긋난 가위처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9.11
Night Market(야시장) Night Market(야시장) 나목 임현숙 넓은 공터에 들어선 거리 식당 두어 시간이면 아시아 먹을거리 장터를 유람한다 저 윗동네와 비교하면 다리 아래 판자촌 같은 곳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입맛 잔치 허름한 가격이지만 돌아서 나올 때면 빵빵한 배만큼 지갑은 날씬해지고 커피에서 돼지갈비..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8.30
근조謹弔 근조謹弔 나목 임현숙 나보다 몇 살 아래 오동나무처럼 단단해 보이던 그녀 암 선고받고 일여 년 만에 바삭한 나뭇잎 되어 하늘로 갔다 몇십 년은 너끈히 살 듯 건강해 보였는데 튼튼한 둥치 속이 좀 슬고 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건 차례가 없다 하니 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8.29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목 임현숙 위이 윙 제초기가 잡초 허리를 자르자 숨어 핀 작은 꽃송이 바들바들 떤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울창한 그대 마음 가지치기해보면 "나, 여기 있어요." 수줍게 고개 드는 꽃 한 송이 진정 누구일까? 2015.08.24 림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