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울림으로 더 깊은 울림으로 임 현 숙 나무들이 미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르르 마른 잎을 털어내며 가을이 깊어갑니다 내 몸에서도 비늘이 떨어집니다 씁쓸한 추억, 떫은 미련, 부질없는 욕망 지는 건 거름 되어 다시 사는 것이나 잊히기에 서글픈 일입니다 가없는 꿈길을 걷다가 걷다가 당신의 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9.25
그 추석이 그립구나 그 추석이 그립구나 임 현 숙 그 추석에는 언니 오빠 형부 시누이 다 모여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슬쩍 잃어주며 흥을 돋우는 남편 서로 잘 못 친다고 탓하는 오빠와 형부 그 틈에서 "고"를 외치며 깔깔거리던 나 뒷손이 착착 잘 붙는 시누이 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9.22
2018.09.15 중앙일보 게재/구월이 오면 https://joinsmediacanada.com/bbs/board.php?bo_table=enews&year=2018&month=9&wr_id=928&sc_no=#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8.09.18
가을의 이름 가을의 이름 임 현 숙 허공을 맴돌며 낙하하는 갈잎을 보면 눈가에 이슬 맺히는 노을 길에 가을비는 임의 소박한 노래처럼 후드득거리는데 방울방울 그리움이 독처럼 번져 목이 잠기고 내 마음은 갈잎을 닮아 빨갛게 그리움으로 노랗게 외로움으로 물들어 간다 바스락 소리에 돌아보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9.15
가을 서정(抒情) 가을 서정(抒情) 임 현 숙 가을을 만나면 누구는 외롭고 누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누구는 서글프다 하는데 흔들리고 싶은 나는 바람의 집 길목 코스모스가 되고 싶어라. -림(20140920)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31
세월 따라서 세월 따라서 임 현 숙 어려선 엄마가 사탕 열 개보다 좋아서 잠깐이라도 눈에서 벗어나면 구구거리며 찾아다녔는데 혼자 문밖출입을 할 만큼 자라선 친구를 알게 되고 차츰 엄마의 순위는 밀려났다 그러다 이성이 마음에 들어온 후 엄마는 콩알처럼 더 작아져 버려 다락방에 밀쳐둔 장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28
뒷모습에 박인 그리움 뒷모습에 박인 그리움 임 현 숙 뒷모습이 쓸쓸한 사람은 수평선 너머에 그리움을 두고 온 사람이다 푸른 정맥에 흐르는 말간 피가 끈적해지는 동안 이 땅에 살아있도록 온기를 준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해 날마다 되새김질하는 사람이다 뒷모습이 젖어있는 사람은 다시 부둥켜안을 수 없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24
버리지 못하는 것들 버리지 못하는 것들 임 현 숙 잊고 살다 이사 갈 때나 꺼내 보는 애물단지들 개선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못다 한 언약 젊은 날의 꿈도 아마 평생 안고 갈 것이다 공허한 날 켜켜이 묵은 삶의 궤적들을 꺼내다가 다시 깊이 묻는다 먼지도 추억도. -림(20130106)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18
풍경(風磬) 소리 풍경(風磬) 소리 임 현 숙 창문가에 소곤거리던 나비 풍경 하나 내 그리움의 더듬이처럼 머언 그리운 소식 뎅그렁뎅그렁 들려주곤 했다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풍경 소리 듣노라면 봄날의 환상에 푸욱 빠져 쓰디쓴 커피가 꿀물 같았다 고대하던 꿈의 계절이 여러 번 지나 풍경도 늙어 뚝 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05
2018.08.04 조선일보 게재/이순에 들다 https://issuu.com/vanchosun.com/docs/180804/16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8.08.04
그땐 몰랐어요 그땐 몰랐어요 임 현 숙 늦은 나이에 낳은 막내딸 키만 커다란 전봇대에 시집 보내 놓고 날마다 전화기 앞에 앉아 기다리셨지요 곰살궂지도 않은 딸이 뭐 그리 예쁘다고 친정 나들이 가던 날은 힘없는 다리 이끌고 부엌을 지키며 따뜻한 밥상 차려 내셨어요 신랑이랑 아가랑 시어머니랑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8.03
오늘 스친 그 바람이 오늘 스친 그 바람이 임 현 숙 풀잎을 스쳐 옷자락 매만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먼 대양을 건너 산굽이를 돌아온 속삭임이 들리지 않니 오늘 스친 그 바람이 몇 날 며칠 전 그리운 임이 보내온 보고 싶다는 말임을 바람이 지난 후에야 뒤돌아보며 그렁그렁 눈물지어도 다시금 돌..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30
6월 어느 날 6월 어느 날 임 현 숙 햇살 우아한 6월 어느 날 들꽃 이쁜 길을 걷다 보면 저 길모퉁이 바스락 소리 내 동무일까 기다려지는데 청잣빛 하늘에 뽀얀 구름 꽃송이 쪼로로롱 찌르찌르 청아한 텃새 노래 수수한 꽃잎은 햇살 분단장 삼매경 바람은 풀잎 귀에 간지게 소곤소곤 내 발걸음도 안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24
섬에서 섬을 그리다 섬에서 섬을 그리다 임 현 숙 물보라 하얗게 꽃 수놓으며 뱃길이 다다른 섬 고요가 푸르게 물들어 오월의 보드란 햇살과 찰랑찰랑 눈빛만 부벼댈뿐 섬사람들도 섬처럼 조용조용 웃는다 일상의 먼지를 깔깔 털어내어도 지긋이 그늘을 드리워주며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시간 회포를 채 못 풀고 돌아오는 뱃길에서 아리게 그려보는 가고 싶은 섬 낯선 섬에도 길이 있어 지나는 이와도 눈빛을 마주하건만 맞바라기 동백섬은 닿을 수 없어 바람 편에 종이학만 접어 보낸다. -림(20160518)/갈리아노 섬에서 섬에서 섬을 그리다 임 현 숙 물보라 하얗게 꽃 수놓으며 뱃길이 다다른 섬 고요가 푸르게 물들어 오월의 보드란 햇살과 찰랑찰랑 눈빛만 부벼댈뿐 섬사람들도 섬처럼 조용조용 웃는다 일상의 먼지를 깔깔 털..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20
본능 본능 임 현 숙 똥 싸며 힘을 주니 참 신기한 우리 아기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가 봐. -림(20180605) 본능 임 현 숙 똥 싸며 힘을 주니 참 신기한 우리 아기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가 봐. -림(20180605) 나목의 글밭/습작·시조야 놀자 2018.07.11
생사의 게임 생사의 게임 임 현 숙 화재 경보가 울린다 옆집 사람들의 황급한 발소리에도 24층 이 여자 여유롭다 오작동이 한 두 번인가 생명을 담보로 경보기와 게임을 한다 소방차 사이렌이 들리자 베란다로 나와 동향을 살피는데 전과 달리 소방관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전 재산인 지갑과 노..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10
내가 만일 내가 만일 임 현 숙 그대 홀로 시린 겨울밤 내가 만일 바람이라면 단숨에 날아가 속삭일 텐데 내가 만일 함박눈이라면 적막강산에 꽃 등불 밝힐 텐데 하지만 난 가도 오도 못 하는 태엽 풀린 인형 그저 멀리서 큐피드 화살만 쏘아댄다네. -림(20151206)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09
밤비1 밤비1 임 현 숙 밤비가 내린다 섬광을 거느리고 포효하며 달리는 굵은 빗발이 관능적이다 청춘은 머얼리 흘러왔건만 마음은 아직도 펄펄 끓는 마그마 온 밤 사무치게 추억을 끌어안는다 꿈길에서도 스치지 못하는 인연 저 빗줄기라면 나란히 달려 절정의 새벽을 맞이할 텐데 밤비야 그렇..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04
거품을 거두고 나면 거품을 거두고 나면 임 현 숙 팔팔 끓는 물에 소고기를 넣으면 거품이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말끔히 걷어내고 무를 넣어 진하게 우려내면 맛깔스러운 국이 된다 고난이라는 열탕에 빠져 발버둥치며 하늘을 탓했는데 내 안에서 녹아 나온 거품이 부글거릴수록 맑아지는 시선과 생각 물욕이 얼마나 어리석은 거품인지 깨우치라고 험한 산을 넘게도 불바다에 빠지게도 하셨구나 거품을 바닥까지 토해내고 나니 소태맛처럼 쓴 삶의 맛이 달고나 맛이다. -림(20151013)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7.01
조금만… 조금만… 임 현 숙 고등어조림이 끓고 있다 그가 다 되었냐고 묻는다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은 고등어 비린내가 무에 젖어드는 시간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따끈한 커피가 냉정해지는 시간 여름이 낙엽에 가을이라 전해주는 시간… 다중 성격이지만 금세 다가와 마침표를 찍는 약..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