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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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 임 현 숙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스베이거스 금빛 찬란한 은하수 그 물결에 부유하러 온 나는 주린 집고양이 저마다 빛나는 호텔에 들어서니 도박장이 눈 맞춤하고 홀린 사람들 곁 지나며 대박 한번 당겨보고 싶어 웅크린 손가락이 꼬물거리지 북적이는 인파, 명품 샵, 화려한 빌딩 따가운 햇볕이 호령하는 거리에 슬픔은 얼굴을 내밀지 못하네 팜 트리만이 손바닥만 한 그늘을 내어주는 거리 헐떡이며 기웃거리다 호텔 방에 들어서면 고요와 안식이 엄마처럼 맞아주어 고독하지 않은 곳 늙은 집고양이 집 밖에서 지낸 며칠 달러로 작은 행복 살 수 있었네. -림(20190528)   라스베이거스  임 현 숙   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스베이거스 금빛 찬란한 은하수 그 물결에 부유하러 온 나는 주린 집고양이 저..

2019.1.26. 중앙일보 게재/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임 현 숙 어서 오십시오 나목 사이로 솟아오르는 새날이여 고난의 장벽을 뛰어넘어 텅 빈 곳간에 금빛 햇살이 넘실거리게 하소서 저 북방 거센 바람으로 나이테 늘어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티끌을 키질하소서 웃음을 잃은 이에게 소망 박을 타게 하시고 사랑을 잃은 이의 눈물을 거두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겸손의 신발을 신고 배려를 지팡이 삼아 무장무장 섬김의 길을 가게 하시고 내 모습 이대로 감사하며 날마다 행복의 샘물을 나누게 하소서 어서 오십시오 나목에 파릇한 옷을 지어줄 새날이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