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그대 생각 - 고정희

라포엠(bluenamok) 2015. 12. 12. 00:08

 

 

 

 

 

그대 생각 -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가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그대 생각 - 고정희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시인의 향기 > 바다 한 접시(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문정희  (0) 2016.10.12
거위 - 문정희  (0) 2016.04.27
먼길 / 문정희   (0) 2015.12.07
그날 아침(외 1편)-나희덕  (0) 2015.12.05
기억의 자리 - 나희덕  (0) 201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