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 위선환
삽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긴 팔을 내려 덥석 내 발목을 움켜쥐더니 거꾸로 치켜들고는 털털 털었다
부러진 뼈토막들이며 해묵은 살점과 주름살들이며 울컥 되넘어오는 욕지기까지를 깡그리 내쏟았다
센 털 몇 올과 차고 작은 눈물 한 방울도 마저 털고 나서는
그나마 남은 가죽을 맨바닥에 펼쳐 깔더니 쿵! 키 높은 탑신을 들어다 눌러놓았다
그렇게 판판해지고 이렇게 깔려 있는데
뿐인가
하늘이 살몸을 포개고는 한없이 깊숙하게 눌러대는 지경이다
(탑 뿌리에 잘못 걸렸던 하늘의 가랑이를 그 사람이 시침 떼고 함께 눌러둔 것)
잔뜩 힘쓰며 깔려 죽는 노릇이지만
이건,
죽을 만큼 황홀한 장엄(莊嚴)이 아닌가
사지에서 구름이 피고 이마 맡에서 별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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