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안녕 가을아 안녕 임 현 숙 해거름 코스모스가 강변에서도 골목 어귀에서도 감탄사를 보내오며 가을이 왔지요 물빛 높은 하늘 뜨겁게 타오르던 단풍 기분좋게 살랑이던 바람까지 붉은 가을은 크고 작은 느낌표로 그리움에 떨게 하더니 아직도 못다 한 노래 풍경 속에 머무는데 동글동글 마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6
마지막 이파리 지다 마지막 이파리 지다 임 현 숙 창밖 미루나무 마지막 이파리 뚝 지던 날 비가 내렸다 나무는 이별이 서러워 주룩주룩 울었다 다 비우고 남은 한 잎만은 화석으로 함께 늙어가기를 언약했건만 붉디붉게 익고 나면 이글거리던 불꽃 사그라지듯 지고 만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떨어진 자리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4
행복이란 행복이란 임 현 숙 밥상에 자리가 하나 둘 비어갔다 처음에 여섯이더니 팔순 어머니 떠나시고 늘 바쁜 남편과 금지옥엽 두 딸과 삼대독자 금동이 그리고 미련한 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는 건 흐린 밤 별 보기보다 어려워져 혼자 먹는 날이 늘어갔지만 몇 시간이면..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3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날의 당신이 그립습니다 임 현 숙 흰 꽃잎 날리듯 눈이 내리면 그리운 사람이 더욱 그립다 추워서 발그레한 귓불이 앵두처럼 예쁘다며 따고 싶다 속삭이던 당신 심장 천둥소리 들킬까 봐 한 걸음 물러섰지만 그날부터 내 마음은 당신의 포로였지요 해일처럼 밀려와 눈멀게 하던 콩깍지..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10
그 시간마저도 그립습니다 그 시간마저도 그립습니다 임 현 숙 멀리 고향을 떠나와 나처럼 외로운 건지 길섶에 옹기종기 살을 비비고 있는 조약돌들 비 내리는 날이면 빗물 따라가려 졸졸졸 거리지만 제자리에서 어깨만 들썩일 뿐 동해의 푸른 숨결 서해의 붉은 낙조 칠월이면 울안에 덩굴지던 능소화 마음 자락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6
안녕 안녕 임 현 숙 지인 아들의 부음은 홀로 살아 뒤늦게 발견된 주검 저승사자는 돌연히 어미 심장에 무덤을 팠다 더는 물을 수 없는 안녕 안녕…. 처음과 마지막 인사 딩동딩동 안부의 초인종 사랑과 나란히 늙어 가는 말 하여 오늘도 난 너에게 넌 나에게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딩동 거기 있..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5
2017.11.04./밴조선 기고-11월의 우리 https://issuu.com/vanchosun.com/docs/171104/16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7.11.04
첫눈 첫눈 임 현 숙 1. 어느 별 꽃이길래 저리도 눈부실까 엄마 문 열고 나와 세상을 처음 보는 울 아기 눈망울처럼 온새미로 흰여울 2. 그립고 그리워서 찾아온 내 님일까 반가워 안아보면 사르르 사라지니 바라만 보아도 좋은 눈꽃 같은 내 사랑 -림(20131117)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3
솔잎 향기따라 솔잎 향기따라 임 현 숙 오색 무희들 나비춤으로 가을의 연회는 막을 내렸네요 검은 선글라스 카메라 셔터 소리 먼 마을로 돌아가고 바람의 긴 수염 낙엽을 쓸어내면 이제야 눈에 드는 소박한 솔 이파리 칠면조 같은 나무들 들러리로 가을을 춤추게 하더니 꽃 지고 잎 진 앙상한 등성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1.02
11월의 우리 11월의 우리 임 현 숙 비어가는 11월 햇살이 짧은 그림자를 거두면 한 뼘 멀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이 밀고 당긴다 멀어진 만큼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 바람 든 무속처럼 한여름 정오의 사랑이 지고 있으므로 슬퍼하지는 말자 꽃이 져야 씨앗이 영글 듯 우리 사랑도 가슴 깊은 곳에 단단..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30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시월 하늘에 단풍 들다 임 현 숙 초저녁, 놀 빛에 물든 보름달이 뒤따라 온다 내 눈에 담을 수 있는 하늘 한 조각엔 언제나 눈동자 하나 낮에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는 눈빛으로 밤이면 눈물 나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하늘이 오늘 저녁엔 예사롭지 않게 눈빛이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8
참 쓸쓸한 아침 참 쓸쓸한 아침 임 현 숙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셔야 하는 아침은 사랑니 나던 아픔이 되살아난다 서둘러 나서야 하는 인생길이 내리는 눈 한 송이도 피할 수 없는 허허벌판이기에 커피의 여운을 누리는 호강이 멀기만 하다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는 건 짝사랑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처럼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5
눈을 뜨니 새벽이었네 눈을 뜨니 새벽이었네 임 현 숙 나 홀로 일어나 앉은 시각 길은 아직 눈 뜨지 않았고 하늘도 꿈속을 헤매고 있네 차가운 마룻바닥 낡은 방석에 무릎 꿇어 쥐나던 날들의 소망 세월이 흘러 의자에 앉아 두 손 모으며 흘리던 참회의 눈물 이제는 누워버린 새벽기도에 예배당 종소리도 울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24
가로등 가로등 임 현 숙 모두가 퇴근하는 시각 집을 나선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침침한 눈으로 주위를 밝히며 습관처럼 발자국 소리를 매만진다 아직도 취직 못 한 일류대 졸업생의 처진 어깨 긴 그림자로 끌어안고 곤드레만드레 아저씨 발목 걱정스레 쏘아보며 고물 줍는 ..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18
새벽 비 새벽 비 임 현 숙 유리창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 꿈결에 창을 여니 울컥울컥 쏟아지는 빗줄기 어느 누가 날 그리워 이토록 울먹이는가 새벽이 먼동 대신 축축한 연서를 가져 왔네. -림(20150208)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17
2017.10.14/밴조선 기고-가을아, 옛이야기 같아라 https://issuu.com/vanchosun.com/docs/171014/16 가을아, 옛이야기 같아라 /임 현 숙 가을인가 봐 그토록 뜨겁던 바람이 그믐달의 싸늘한 눈매를 닮았어 가로수 잎이 뱅그르르 바람개비 되었네 가을이 오면 여름이 떠나가듯이 꿈의 내일이 오면 시련의 오늘이 지나간다지 황금 가을이 내게 올 때 제비.. 나목의 글밭/지면·너른 세상으로 2017.10.14
미련 미련 임 현 숙 깊숙한 어둠 속에서 겨울옷을 끄집어낸다 여름은 더 깊이 갇혔고 아직 철삿줄에 대롱거리는 가을 한 번도 외출을 못한 채 겨울에 밀려나는 가을이 슬프게 바라본다 오랜 기억 속의 네 눈빛처럼. -림(2012)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7
그 추석이 그립구나 그 추석이 그립구나 임 현 숙 그 추석에는 언니 오빠 형부 시누이 다 모여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을 물리고 나면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슬쩍 잃어주며 흥을 돋우는 남편 서로 잘 못 친다고 탓하는 오빠와 형부 그 틈에서 "고"를 외치며 깔깔거리던 나 뒷손이 착착 잘 붙는 시누이 추..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3
가을의 포로 가을의 포로 임 현 숙 가을은 늑대의 야성을 풀어놓고 여우의 관능에 꼬리를 달았다 은하수에 넘치는 별빛의 그윽한 눈빛도 아침 마당에 은은히 내리던 햇살도 이미 가을의 포로이다 그립다 외롭다 떠나고 싶다 방황하는 영혼의 넋두리가 붉게 물든 이파리마다 총총하다 가을은 침묵하..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2
10월의 서시 10월의 서시 임 현 숙 앙상한 겨울 숲에선 침묵을 배웠고 연둣빛 너울대는 숲에선 희망을 품었다 이제 나뭇잎이 푸르른 수줍음에서 깨어나 짙은 화장을 하는 가을이다 바알갛게 타는 숲에서 십 년 체증을 불태우라고 시월의 숲이 날 부른다 저녁엔 절망이란 가시에 찔리고 아침이 오면 희..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