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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혼잣말·그리운 날에게

백년 손님

라포엠(bluenamok) 2015. 6. 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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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손님

 

                                                                 나목 임현숙

 

 

 

 

 딸을 가진 어머니라면 누구나 사위에 대한 꿈이 있을 것이다.

내 친정어머니도 바람이 있었다.

복스러운 외모에 유머러스하고 붙임성 좋은 사윗감을 원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꿈과는 거리가 먼 사람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뚝뚝하고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술자리에서나 말문이 열리는 사람이니 장모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부부간의 호칭인 '여보', '당신'도 쑥스럽다는 사람이어서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장모님 생전에 불러본 적이 없다.

이따금 남편은 그 점을 후회하며 죄송해 한다.

 

 나도 두 딸의 어머니로서 당연히 사위에 대한 꿈이 있다.

보편적인 조건이야 당사자들이 좋다면 문제 될 것 없고 엄마의 바람처럼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있는 사윗감이기를 바란다.

이제 결혼 이년 차인 큰 사위는 바람대로 얻었지만, 문제는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 있다.

맏사위는 중국계 이민 3세, 캐나다인이다.

딸 부부와 함께 살다 보니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저녁 식탁에서는대화가 오고 간다.

사위는 흔연스럽게 말을 걸지만, 내 영어 실력이 신통치 않아 짧은 말 한마디 외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같은 언어로 대화를 능통하게 할 수 있다면 사위와 더욱 돈독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늘 아쉽기만 하다.

이민을 오면서 아이들의 배우자가 외국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염두에 두었지만, 막상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맏사위는 눈치가 빠르고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고 있어 내 짧은 영어로도 의사소통은 하고 사니 다행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백년손님'이라는 프로를 즐겨본다.

주말에 사위가 처가에서 장모와 일박 이일을 함께 보내는 일상을 담는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은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아들보다 더 친근한 사이가 아닌가 싶다.

'백년손님'에는 몇 가지 유형의 장모와 사위가 나오는데 '톰과 제리' 유형이 마음에 든다. 

만화영화-톰과 제리-처럼 서로 약 올리고 골탕을 먹이지만 절대 과하지 않고 악의없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아끼고 사랑한다.

마치 엄마와 아들처럼 거리감 없는 모습이 부럽다.

 

  '백년손님'을 통해 내가 누리지 못하는 생활을 대리만족하며 아직 결혼을 안 한 둘째 딸에게 또 한 번 야무진 기대를 걸어다.

사위와 알콩달콩한 일상을 그려보며 떡을 받기도 전에 김칫국물만 퍼대는 건 아닌지….

 

 

2015.06.03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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