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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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빨랫줄

엄마의 빨랫줄 임 현 숙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펄럭이고 있었다엄마가 불쑥 그리운 날먼저 가신 하늘에 빨랫줄 매어 놓고엄마의 호박꽃 미소를 널어 본다. -림(20090709)

안개 도로

안개 도로  임 현 숙   온종일 안개가 마을을 먹고 있다 시골집 굴뚝에서 웅성웅성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꾸역꾸역 달려와 지붕을 삼키고 키 큰 나무를 베어 먹더니 지나는 차까지 꿀꺽한다 잿빛 도로가 덜거덕거리며 어깨를 비튼다 문득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에 업은 삶의 무게가 저 길만 할까 싶다 달리는 쇳덩어리에 고스란히 밟히다가 달빛이 교교한 새벽녘에서야 숨을 돌린다 신과의 싸움에서 진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처럼 거북등 같은 저 길도 돌아눕지 못하는 모진 형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수은등 빛 안개가 아픈 등을 핥으면 워어워엉 슬픈 울림이 안갯속을 걸어 다닌다 길은 붉은 눈물을 떨구고  바라보는 내 등에 날개가 돋는다.  -림(20140117) https:..

바다장(葬礼)

바다장(葬礼)을 바라보며 임현숙  영종대교가 저만치 바라보이는 바다여기라고 손 흔드는 부표파랑 이는 그곳에 이별이 흐른다 언젠간 가야하는 저승길물속에서 태어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  바다장꾹꾹 눌러 우는 울음이 부표를 맴돌고망자는 점점이흐르다 흐르다 파도가 된다 '죽어 누울 방 한 칸을 마련하고 돌아서며세상을 더 사랑하게 될까 봐 울었다'는어느 노시인이 떠올라내 오랜 바람을 일서둘러 저 바다에 묻는다 꽃송이 송이 부표 옆을 흐르며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흔들리는 부표.  -림(20240426)

흐린 봄날의 사색

흐린 봄날의 사색 임 현 숙    밤새 울다 지친 하늘이 시름겨운 낯빛으로 눈 뜨는 아침  찌푸린 구름을 걷고   봄이 오는 산야에푸짐한 햇살을 고루고루 퍼주고 싶다 건넛집 할머니 하회탈 얼굴에 추워 웅크린 꽃망울에 서글픈 마음 벽에 솜털 같은 봄볕을 바르고 싶다 "엄마, 난 괜찮아요."봄빛 닮은 한마디저 하늘로 쏘아 올리고 싶다 여우비 내린다쨍쨍한 햇살로 도배되는 하루는싱그러운 수채화 두루마리.  -림(20240428)

산이 일어선다

산이 일어선다 임현숙 산이 일어선다 투명한 봄햇살에 검푸른 수의를 벗고 있다 푸른 피부가 짓이겨지고 불에 타버려도 죽음을 모르는 불사조 세월 무덤에서 삭정이 털어내며 부활하고 있다 골 따라 흐르는 맑은 피 일어서는 풀향기 꽃향기 아랫마을 숙이는 에취 에취 코앓이 중이지만 마음은 바람 타는 청보리밭이다 산마루 보듬고 있던 하늘도 좋아라 금빛 햇살 펌프질하고 볕에 굶주렸던 겨울 사람 금싸라기 분칠하며 부활의 날개 파드닥거린다 산이 일어선다 산 아래 살아있는 것들이 초록초록하다. -림(20240401) 유투브 업로드 https://www.youtube.com/watch?v=qDcmJFj7Fcg

봄머리에

봄머리에 임 현 숙 잎샘바람 속살에서 봄이 해처럼 솟아오른다 민들레 선한 얼굴로 잔디밭에 발톱을 기르고 겨우내 쓸쓸 주렴 드리운 창가에 정다운 봄볕 놀러 오니 태평양 건너 얼굴 얼굴이 꽃숭어리로 핀다 잘 지내니 언제 볼 수 있을까 살다 보면 만나지겠지 꽃송이마다 팽팽한 말풍선 열리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풍선 하나하나 터트리며 꽃물 들이는 봄머리 발바닥이 짜 르 르 르 나도 꽃이 되려나 보다. -림(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