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혼잣말·그리운 날에게

주차장 유감

라포엠(bluenamok) 2012. 10. 24. 07:03

 

 

 

 

 

 

 

주차장 유감

           안개비 임현숙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장을 보러 나섰다.

평소에는 가까운 서양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사골국을 끓일까 싶어 한국마켓으로 향했다.

주차장도 넓고 쇼핑하기가 편한 이유로 'H1'보다는 'H2'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H1'으로 갔다.

때때로 'H1'이 싸고 좋은 물건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왠지 발길이 그쪽으로 향해졌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빈자리가 있었다. 밴과 밴 사이에 주차를 했다.

불길한 예감도 없었는데 장을 다 보고 차있는 곳에 와보니

왼쪽에 밴이 나가고 소형차가 후면 주차가 되어있었다.

트렁크 여닫기가 귀찮아 운전석 뒷문을 여는데 옆 차 사이드미러가 걸려 반밖에 열리지 않아

장 본 것을 뒷좌석에 올려놓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옆 차 뒷문 손잡이 쪽에 내 차 문이 살짝 부딪혔다.

순간 놀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내 딸 또래되는 여자였다.

"미안해요." 차에 오르며 사과를 하고 난 후 혼잣말로

"차를 반대로 주차해서 불편하네." 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말을 들었던 가 보다.

시동을 거는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가 차에 타며 문을 일부러 활짝 열어 내 차에 부딪히고 있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사과의 말을 기다렸는데 모른척하고 가려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잘못한 일은 바로 사과를 하지만

억울하다 생각되거나 부당한 일에 대해선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냥 둘 일이 아니었다. 유리창을 열고 손짓을 했으나 본 척도 안 한다.

모르는 일이 아니라 보복성으로 한 일이란 게 눈에 빤히 보였다.
크락션을 울려도 돌아보지 않길래 내 차를 조금 뒤로 뺀 후 다시 창문을 내리라 손짓을 했다.

그제야 창문을 내린다.

"지금 차 문을 부딪치고 사과도 안 하세요?" 내가 물었다.

"아줌마도 부딪혔잖아요."

"그래서 사과했잖아요. 그렇다고 보복하세요?"

"뒷말하셨잖아요. 차를 거꾸로 대서 그랬다고 뭐라 하셨잖아요."

"내 혼잣말이에요. 뒤로 대서 불편하다고 그랬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보복을 하면 돼요?"

"잘 못하시고 제가 차를 잘 못 대서 그런 거라 하셨잖아요."

기가 막혔다. 얼굴은 곱상하니 선하게 생겼는데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동방예의지국을 논하고 싶지도 않고 이미 그런 얘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었으니

먹히지도 않는 얘기겠지만 딸 같은 아이가 정당방위라는 듯

대드는 모습에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이 좁은 밴쿠버에서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질지 모르는데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소리치며 싸울 수도 없는 일이고 말 해봤자 내 속만 더 상할 것 같아

"말할 가치도 없군. " 한 마디 쏘아대고 문을 닫았다.

휑하니 사라지는 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분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딸도 이렇게 작은 일에 보복하고 다니지는 않을까?

내 아들이 이다음에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을 때 저렇듯 마음 씀씀이가 고약하면 어쩌나...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정당성을 관철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보복을 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삶에는 작은 시비가 비일비재하다.

작은 일에 용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분풀이한다면

거리에는 소리치며 다투는 모습이 만연할 것이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참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넘치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2012.10.22 림

 

 

 

'나목의 글밭 > 혼잣말·그리운 날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애상  (0) 2012.11.10
비와 안개와 그리움으로...  (0) 2012.10.28
예습 없는 삶/묵은 글  (0) 2012.09.28
깨진 사발은 되지 말자  (0) 2012.08.08
괜찮다  (0) 201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