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빵 치마
임현숙
내 유년의 옷은 늘 무릎 아래에서 치렁거렸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입어보았을 체크무늬 멜빵 치마
똑같은 옷을 입은 이웃 친구는
탱글탱글한 토마토 같은 무르팍이 방글거리는데
내 치마는 기도하는 수녀처럼 늘 엄숙했다
물려줄 동생도 없고 콩나물처럼 키가 자라서
엄마의 가계부에는
멋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치맛단도 무릎까지 올려 박았고
허리둘레도 가슴통만큼 넓혀 멜빵을 달았다
학교길에 친구랑 나란히 걸어가면
철부지 마음에 먹구름이 일기도 했다
그 시절 기억의 파노라마엔
다음 해에 그 멜빵 치마를 입은 장면이 없다
키보다 앞서간 바람기가
수녀 옷을 거부했을까
딸아이가 교복 치마를 돌돌 걷어 입으면
볼멘소리하다가도
유년의 치마가 떠올라 돌아서 웃었다
세월이 하 흘러
늙은 토마토 같은 무르팍이 부끄러워
발목에 찰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머언 동심을 어루만져본다.
-림(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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