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닦으며
임현숙
냄비의 찌꺼기를 닦는다
손등이 도드라지도록 문지르니
반들반들 은빛 화색이 돈다
내 생각의 부스러기도
냄비처럼 닦고 싶다
책을 펴들어
현인의 지혜로 쓸어내고
복음으로 베어 보지만
칼칼한 게 개운하지 않다
가을이 무르익은 시집을 연다
'묵은 벽지가 바람처럼 들판을 간다'
한 절의 시구가
까칠한 화장기를 벗겨 낸다
향이 깊은 시는 마음을 닦는 비누이다
나도
누군가
누군가의 마음을
닦아 주는 시가 되고 싶다.
-림(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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